모든 위대한 항해는 때로 원치 않는 항구에서 시작되곤 한다.
부서진 꿈의 조각 위에서, 비로소 시작된 나의 길
고등학생 시절, 나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흰 가운을 입고 환자를 고치는 의사. 하지만 고3 겨울, 마주한 성적표는 차갑고 냉정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고, 꿈은 손끝에서 부서졌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간호학과. 그것은 열정보다는 패배감 섞인 타협에 가까웠다.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내게 서울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비록 시작은 어긋났을지라도 여기서 멈추지는 않겠노라고, 이름만 대면 알법한 대학 병원의 간호사가 되어 내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노라는 새로운 야망을 품고 낯선 서울 땅에 발을 내디뎠다.
운명은 묘했다. 대학 친구들과 함께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합격 통지서를 받은 것은 나뿐이었다. 의지하던 친구들은 모두 고향에 남았고, 나 홀로 연고 없는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98년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IMF 외환위기가 몰아쳤다. 경제는 무너졌고 병원은 신규 간호사 발령을 무기한 연기했다. 합격은 했으나 갈 곳 없는 '발령 대기자'의 신분으로 나는 이름 없는 개인 병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언제가 될지 모를 호출을 기다려야 했다. 큰 병원에서 진짜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이 이대로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봐 두려웠던 시간이었다.
간곡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발령 통지서를 받던 날, 나는 내 꿈이 드디어 이뤄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다. 기쁨은 찰나였고, 지옥 같은 3교대의 삶이 시작되었다.
낮과 밤이 뒤바뀐 불규칙한 리듬은 젊은 간호사의 생기를 순식간에 앗아갔다. 환자의 생명이 내 손끝에 달렸다는 중압감, 선배들의 서슬 퍼런 꾸중, 그리고 퇴근길 텅 빈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지독한 외로움.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꿈 많은 소녀가 아니었다. 초췌한 얼굴로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지친 노동자였다.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출근하기를 수백 번. 하지만 나는 그만둘 수 없었다. 멀리서 나를 응원하는 부모님, 그리고 의사의 꿈은 꺾였을지언정 '간호사'로서의 자부심마저 꺾일 수는 없다는 마지막 오기가 나를 붙잡았다.
그렇게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정신없이 환자 사이를 뛰어다닌 지 3년. 어느덧 나는 환자의 숨소리만 듣고도 상태를 짐작하는 '진짜 간호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3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보였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부서진 꿈의 조각이 아니라, 더 큰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갈 단단한 뿌리였다는 사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