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합정역 샌드위치로 버틴 이유
간호사로서의 삶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문득 깨달았다. 반복되는 일상과 거친 3교대 시스템 속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마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갈증, 그리고 나 자신의 전문성을 세계적인 수준에서 확인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흔들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목표가 바로 미국 간호사 면허(RN-NCLEX)였다.
그날부터 나의 일상은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질주의 연속이었다. 데이(Day) 근무가 끝나는 오후 3시 반, 스테이션에 차트를 내려놓기 무섭게 병원 문을 나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뛰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좌석은 내게 또 다른 공부방이었다.
강의실이 있던 합정역 인근에 도착하면 수업 시작 전까지 주어진 시간은 채 20분도 되지 않았다. 지하철역 앞 작은 샌드위치 가게에 앉아 한 손에는 샌드위치를, 다른 한 손에는 영어로 된 간호 용어 카드를 들고 끼니를 때우던 저녁들. 3교대의 고단함에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 허벅지를 찔러가며 들었던 강의는 지금 생각해도 코끝이 찡해지는 치열한 기억이다.
시험 날짜를 잡는 과정조차 커다란 산이었다. 서툰 영어로 전화를 걸어 시험 센터와 씨름하며 '종증(ATT)'을 기다리던 밤들. 그 막막했던 언어의 장벽조차 나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운 좋게도 나는 한국 내에 시험 센터가 운영되던 마지막 시기에 시험을 치렀다. 당시 한 학원의 '족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감독관들의 엄격한 감시가 이어졌고, 결국 한국 내 시험 센터는 영원히 문을 닫았다. 이제는 후배들이 시험을 위해 일본이나 필리핀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때 그 문턱을 넘기 위해 쏟았던 내 간절함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는다.
시험 합격 후, 나는 미국행 대신 한국에서의 삶을 이어가기로 선택했다. 당시 함께 공부하고 미국으로 떠난 선배들은 지금 해외에서 고액 연봉과 여유로운 근무 환경을 누리며 간호사로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그들의 삶이 부럽지 않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몸은 한국에 남았지만, 그 시절 나를 몰아붙이며 따냈던 면허증은 내 마음속에 커다란 자부심의 닻을 내리게 했다. '언제든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자신감은 이후 내가 마주한 수많은 삶의 고비들을 넘게 해준 단단한 맷집이 되어주었다.
해외로 나간 동료들의 삶이 '공간의 확장'이라면, 한국에 남은 나의 삶은 이곳에서 간호사로서의 소명을 지키며 쌓아온 '내면의 확장'이다.
합정역 샌드위치를 씹으며 영단어를 외우던 그 20대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 환자의 곁을 지키며 단단한 마음으로 서 있는 나 또한 없었을 것이다. 기회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지 않다. 다만 준비된 자만이 그 문이 닫히기 직전, 마지막 열차에 올라탈 자격을 얻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