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나에게 준 선물
병원의 하얀 복도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 나는 용기를 내어 병원 담장 너머의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3교대의 불규칙한 리듬 속에서도 '석사 과정'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슴에 품은 것이다. 스테이션에서 차트와 씨름하다 강의실 책상 앞에 앉으면, 나는 비로소 '간호사'가 아닌 '학생'으로 돌아가 숨을 쉬었다. 새로운 학문을 마주하고 낯선 이들과 토론하는 그 시간은 고된 노동 뒤에 찾아온 달콤한 보상이었다.
논문이라는 거대한 산, 그리고 만난 나의 영원한 스승
하지만 배움의 즐거움도 잠시, '논문'이라는 거대한 벽이 나를 가로막았다. 연구가 무엇인지, 논문의 첫 문장을 어떻게 떼야 하는지도 몰랐던 내게 그것은 넘지 못할 산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의 손을 잡아주신 분이 바로 오현수 지도 교수님이셨다.
교수님은 길을 잃고 헤매던 내게 단순한 지식을 넘어, 학문을 대하는 태도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르쳐주셨다. 교수님의 따뜻한 격려와 엄격한 가르침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그 산의 중턱에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교수님의 사랑은 나를 석사에서 멈추게 하지 않았고, 감히 상상도 못 했던 박사 과정이라는 더 깊은 바다로 나를 이끌어 주셨다.
박사 과정은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눈을 비비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외 유명 학회지(SCI급)에 논문을 수록하기 위해 영문 초록과 씨름하던 밤들. 남들이 잠든 시간에 나는 연구의 가설을 세우고 통계 수치와 대화했다.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대한간호협회 박사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되던 날, 나는 그간의 모든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3교대를 병행하며 일궈낸 성과였기에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단순히 학위를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간호의 가치를 학문적으로 증명해내고 싶었던 나의 진심이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교수님은 내게 학문적 성취 그 이상의 기회를 열어주셨다. 현장의 생생한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나를 믿고 강단에 설 기회를 주신 것이다. 강사로 시작해 겸임 교수, 그리고 초빙 교수가 되어 학생들 앞에 섰을 때의 그 떨림을 잊을 수 없다.
"선생님처럼 멋진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내가 3교대가 힘들다고 배움을 포기했다면, 만약 오현수 교수님이라는 귀한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면 결코 맛보지 못했을 감동이다.
나의 대학 졸업장은 단순히 학교를 마쳤다는 증서가 아니다. 그것은 3교대의 밤을 건너온 인내의 기록이자, 스승님의 사랑이 빚어낸 결실이며, 이제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다. 나는 오늘도 강단에 서서 꿈을 꾼다. 내가 교수님께 받은 그 따뜻한 등불을, 이제는 나의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