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박사 학위 뒤에 찾아온 공허함

'나눔'이라는 처방전을 쓰다.

by 박지숙

긴 사투 끝에 마침내 '박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3교대와 학업을 병행하며 그토록 갈구했던 목표였다. 병원에서는 보수교육 강사로 서게 되었고, 병원의 질을 높이는 QI(의료질향상) 활동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성취의 기쁨은 잠시였고, 마음 한구석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정답이라 믿었는데, 정작 그 자리에 서니 '이 지식이 누구를 위해 쓰여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병원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고등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에서 찾은 답

나는 병원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의료인이 아닌, 평범한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아이들에게 심폐소생술(BLS)을 가르치며 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선생님, 제가 정말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요?"

겁에 질린 듯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내 심장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박사 논문의 복잡한 통계 수치보다, 내 설명을 듣고 마네킹의 가슴을 힘차게 압박하는 아이의 서툰 손길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 내가 배운 이 전문 지식이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실제적인 힘'이 될 때 비로소 나의 공부가 완성되는구나.


다시 시작된 도전, BLS Instructor라는 완장을 차다

봉사활동에서 느낀 기쁨은 나를 또 다른 도전으로 이끌었다.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 공인된 교육자로서 역량을 갖추고 싶어 'BLS Instructor(심폐소생술 강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이미 박사 학위까지 따냈으니 쉬울 법도 했지만, 생명을 다루는 술기를 가르치는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엄격했다.

수많은 실기 과정과 까다로운 시험, 교육 시뮬레이션을 통과해야 했다. 30년 차 간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교본을 파고들었다. 마침내 내 가슴에 'Instructor'라는 명찰을 달던 날, 나는 학위를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전율을 느꼈다. 이것은 나를 위한 계급장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쓰일 '봉사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병원 안으로 가져온 새로운 에너지

이제 나는 병원 내에서도 전문 강사로서 동료와 후배들에게 BLS를 가르친다. 박사 간호사로서 이론을 전달할 때보다, 강사로서 함께 가슴을 압박하고 호흡을 맞출 때 동료들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공허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눔의 기쁨'이 들어찼다. 병원 밖 봉사 현장에서 시작된 작은 날갯짓이 나의 임상 현장까지 더 활기차게 바꾼 것이다.


성공이란 어쩌면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얼마나 가치 있게 나누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강의장에 서서 수강생들에게 말한다. 우리의 손길이 멈추지 않는 한, 누군가의 심장은 다시 뛸 수 있다고. 그 진리를 전하는 지금, 나는 간호사로 산 30년 중 가장 빛나는 계절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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