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움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쉼표가 필요한 시간

나를 향해 건네는 한마디가 그 어떤 약보다도 달콤한 치유가 된다

by 박지숙

정신없이 살다 보면 시간이 지워지는 기분이 든다. 다시 수간호사라는 완장을 차고 싶었던 세속적인 욕심도, 마음 한구석을 갉아먹던 복잡한 잡생각들도, 몸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는 분주함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나는 그 망각의 상태를 '열심히 사는 것'이라 착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투잡을 뛰고, 공모전에 낼 글을 쓰고, 대학 수업을 나가고, 남들이 쉬는 토요일 근무까지 미친 듯이 자처했다. 통장의 숫자가 불어날수록 마음의 허전함이 채워지는 듯했고, 불필요한 생각들이 사라지는 그 '바쁨의 진통제'에 취해 살았다. 어쩌면 나는 바쁜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으면 마주하게 될 내 안의 공허함이 두려워 계속 도망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근무 중 갑자기 눈앞이 핑글 돌더니 사방이 아득해졌다. 간신히 들어선 화장실에서 나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차가운 타일 바닥의 냉기가 뺨에 닿았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세상을 돌린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돌리고 있었다는 것을.

어지러움증. 그것은 뇌가 보내는 신호이자, 영혼이 보내는 비명이었다. "조금만 천천히 가라고,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된다고."

수간호사가 되어야만 내 존재가 증명되는 것도 아니고, 통장의 잔고가 내 행복의 전부는 아닐 텐데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스스로를 학대하듯 몰아붙였을까. 화장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아주 오랜만에 '멈춤'을 경험했다. 억지로 멈춘 것이 아니라, 몸이 나를 멈춰 세워준 것이다.


"정말 쉬어가라는 신호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래야 했다. 쉼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 걸음을 위한 정비다. 미친 듯이 달리는 동안 놓쳤던 풍경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남편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나 자신'의 안부를 이제는 물어야 할 때였다.


마음의 허전함은 밖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고여야 하는 것이었다. 돈으로도, 명예로도 메울 수 없는 그 빈자리는 오직 평온한 휴식과 자기 긍정으로만 채울 수 있음을, 나는 쓰러지고 나서야 배웠다.

이제 나는 조금 느리게 걷기로 했다. 공모전 당선보다 내 몸의 건강을 먼저 쓰고, 토요일의 특근비보다 가족과 나누는 늦잠의 달콤함을 선택하려 한다. 수간호사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나는 여전히 유능한 간호사이며, 박사이고, 무엇보다 사랑받는 사람이다.


어지러움증은 나를 무너뜨린 병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해 찾아온 귀한 손님이었다. "박 선생님,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괜찮아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해왔으니까요."


나를 향해 건네는 이 한마디가 그 어떤 약보다도 달콤한 치유가 되어 가슴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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