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삼키지 못한 눈물, 고인이 남기고 간 '감사의 호두과자'
간호사로 산다는 것은 매일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28년을 이 길 위에 서 있어도 결코 무뎌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바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끝내 떠나보낸 이들의 '흔적'과 마주할 때다.
그분은 폐암 말기 환자였다. 숨 한 번 크게 들이쉬는 것이 생의 마지막 과제인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유독 우리 의료진에게는 늘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던 분이었다. 간호사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산소마스크 너머로 겨우 "고마워요", "미안해요"라는 눈빛을 보내던 그 선한 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그분의 숨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손을 잡았고, 연구직과 임상을 병행하며 쌓아온 모든 지식을 동원해 그 고통을 덜어주려 애썼다. 그러나 죽음은 공평했고, 그분은 결국 어느 고요한 새벽, 가족들의 눈물 속에서 영면하셨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 뒤, 병동 앞으로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다. 고인의 가족이 가져온 것은 소박한 '호두과자'였다. 슬픔이 가시지도 않았을 가족들이 우리를 위해 챙겨온 그 마음이 상자를 여는 순간 묵직하게 다가왔다.
"우리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간호사 선생님들 덕분에 편안히 가셨다고, 꼭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에 병동의 공기는 정지된 듯 고요해졌다. 연봉 9,880만 원을 달성하고, 2급으로 승진하고, 수많은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을 때도 느끼지 못한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 치밀어 올랐다. 우리가 한 일은 그저 간호사로서의 본분을 다한 것뿐이었는데, 그들은 우리를 '가족의 마지막 길을 지켜준 은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호두과자 하나를 입에 넣었을 때, 그것은 차마 삼키기 힘든 무게였다. 달콤함보다는 짭조름한 눈물 맛이 먼저 느껴졌다.
우리는 때때로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느냐"는 질문에 "공허함을 지우기 위해"라고 답하곤 한다. 하지만 이 호두과자를 씹으며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고, 3교대의 사투를 벌이며 이곳을 지켜온 진짜 이유는, 누군가의 가장 아픈 순간에 따뜻한 손길 하나를 더해주기 위함이었음을.
고인이 남기고 간 호두과자는 내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단순히 직장인으로서의 업무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이 일의 숭고함을 다시금 새기게 했다.
비록 사람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감사의 마음은 우리 병동 곳곳에 향기처럼 남았다. 오늘도 나는 그 호두과자의 온기를 기억하며 유니폼의 깃을 바로 세운다. 누군가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도록,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기꺼이 감사를 전할 수 있는 그런 간호를 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