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
병원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가장 선명하게 대조되는 곳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전 재산을 내던지지만, 누군가는 떠나가는 이의 숨결을 돈으로 환산하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간호사로 오래 근무하다 보면 가끔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서늘한 민낯을 보게 된다.
유방암으로 입원했던 한 여성 환자가 있었다. 암세포는 이미 온몸으로 전이되어 그녀의 생명력은 촛불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곁을 지키는 남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눈빛으로 전하곤 했다. 하지만 그 따뜻한 시선 너머, 남편의 머릿속은 전혀 다른 숫자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남편은 부인의 상태가 위독해지자마자 가장 먼저 '서류'를 챙겼다. 그는 아픈 아내의 손을 빌려 각종 보험의 수령인을 모두 자신 앞으로 변경해 두었다. 아내가 항암 치료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동안, 그는 병실 밖 복도에서 보험 약관을 살피고 수령 금액을 가늠했다.
비극의 정점은 그녀가 숨을 거둔 직후에 찾아왔다.
환자의 심장 박동이 멈추고 사망 선고가 내려진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가족의 통곡 소리가 병실을 채워야 할 그 순간, 남편은 차가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스테이션 바로 앞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보험사죠? 피보험자가 방금 사망했는데, 보험금 수령 확인 좀 하려고요."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의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숙제를 끝낸 사람처럼 차분하고 명확했다. 방금 전까지 온기를 나누던 아내의 시신이 아직 침대 위에 그대로 있는데, 그는 아내의 생명이 소멸한 대가로 손에 쥘 돈의 액수부터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 간호사들은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아내 좀 살려달라"며 애절하게 말하던 그의 모습이 모두 연극이었던가 싶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의조차 저버린 그 서늘한 탐욕 앞에, 우리가 지켜온 사명감이 한순간에 무력해지는 기분이었다.
병원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다. 그 경계에서 우리는 사랑의 위대함을 배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돈 앞에 무너진 인간성의 파산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 남편에게 아내의 목숨은 사랑의 대상이었을까, 아니면 고수익의 투자 상품이었을까.
사망 진단서를 발급해 주며 내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수만 번의 죽음을 보아왔지만, 죽음보다 더 차가운 인간의 마음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그날 병원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금 다짐했다.
세상이 아무리 돈의 논리로 돌아가더라도, 우리 간호사들만큼은 끝까지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끝까지 믿어주는 누군가가 이 병동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