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은 이른 성장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성조숙증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 그것은 부끄러움에 숨겨야 하는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그 탓에 체육 시간 달리기가 가장 싫었다.
옷 끝단을 잡아 밀어 최대한 몸에서 멀리 떨어트렸다.
그렇다고 티가 안 났겠는가. 내가 뛸 때마다 아이들은 히죽거렸다.
처음으로 국민체조를 하던 날, 잘도 따라 하던 나를 선생님은 운동장 교단에 세웠다. 그날 여기저기서 터지는 낄낄거림 속에 나는 서 있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울며 말했다.
“난 왜 이렇게 가슴이 튀어나왔냐고!”
옆에서 듣고 있던 외할머니가 앉은 채 양팔을 벌렸다.
쏟아지는 서러움에 외할머니의 저고리는 나의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됐다.
“할매가 해결해 주꾸마. 그기 뭐라고! 애들이 참 못됐네.”
하며 혀를 끌끌 찼다.
“무슨 방법요?”
엄마의 질문에 벽장에서 몇 가지를 찾아 꺼내오라고 했다.
“불 켜라.”
평소 웬만해서 전등을 켜지 않는 외할머니의 그 말은 뭔가 중요한 일이 시작되는 신호였다.
탄탄한 하얀 천 두루마리와 50년쯤 된 반짇고리함이 바닥에 놓였다.
외할머니는 줄자를 꺼내 내 가슴둘레를 쟀다.
한 뼘 높이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천을 잘라, 테두리를 접어 촘촘하게 꿰맸다.
가로로 펼친 양쪽을 마주 포개서 한쪽엔 구멍 네 개를, 반대쪽엔 작은 단추 네 개를 달았다.
연한 분홍색 자투리 천은 얇은 어깨끈으로 변했다.
마지막으로 둘을 합치니 처음 보는 가리개가 되었다.
“헌아 이리 와봐라.”
외할머니는 한복을 입히듯 마주 서서 내게 입혔다.
몸에 탄탄하게 감겨서 적당히 조여진 속옷은, 방방 뛰어도 빙글빙글 돌아도 나의 창피함을 티 나지 않게 해 줬다.
“옛날에는 다 이러고 다녔다.”
“할매는 마술사야!”
그 가리개를 한 나는 옷을 여미지 않았다. 누군가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외할머니는 내게, 아무도 풀어주지 못했던 세상을 만들어 선물했다.
-오래된 장면의 기억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