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눈물과 선물

by 서연필

네 남매 중 맏아들이었던 외할아버지는 스물셋에 혼례를 올렸다. 외할머니는 열일곱이었다.

엄마가 태어나던 해 6.25 전쟁이 나, 외할아버지는 두 동생과 마을에서 트럭을 타고 떠났다.

항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큰 배와 큰 트럭에 줄을 서서 타고 있었다.

“나는 어디에 줄을 서야 하지?”

“형님은 기술이 있으니, 기술자 뽑는 곳에 줄을 서야 할 것 같습니다.”

철도 공사에서 근무했던 외할아버지는 결국 동생들과는 다른 줄에 섰다. 잠시 후 동생들은 트럭을,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며 헤어졌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며 움직였어야지, 왜 형님만 보냈습니까.” 외할머니는 그날 할아버지들의 결정을 사무치듯 원망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4년이 지나 유해도 없이 전사 통지서만 덩그러니 날아들었다.

현충일은 우리 외할머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되었다.

날짜가 다가오면 안내장이 우편으로 왔다. 손에서 종이를 놓지 않고 전부 외우려는 듯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해마다 입는 흰 한복을 꺼내 벽에 걸어놓았다.

추념식 장소는 시내 작은 동산에 있는 공원이었다.

“휴우~ 천천히 가자.”

오늘만큼은 외할머니의 굽어진 무릎이 말썽을 덜 부리길 바랐다.

사이렌이 울리고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하면 외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손수건으로 눈을 닦기도 하고, 옆 할머니 등을 쓰다듬기도 했다.

식이 끝나 외할머니의 이름이 호명되면, 내가 빵과 음료수가 들어있는 상자를 받아왔다. 외할머니는 그 상자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집에 도착하면 빵 상자를 열어, 법당 한쪽 외할아버지 자리에 올려놓았다. 쓸쓸한 뒷모습을 볼 때마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할매.”

“오야.”

“외할아버지는 오늘 충혼탑에 왔겠지?”

“왔지. 제사 때도 오고 우리 헌아 보고 싶을 때도 오지. 살아 있었으면 우리 헌아 얼마나 예뻐했을꼬.”

안방 문 위에 걸려있는 잘생긴 외할아버지 사진을 쳐다봤다.

“외할아버지가 꿈에는 나와?”

“나왔지. 하얀 도포 입고 총 맞아 죽은 거 아니고, 산에서 길을 잃어 호랑이 밥이 되었으니 원통해하지 말라고 하셨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외할머니는 그 꿈이 위안이 되는 듯했다.

몇 년이 지나 지역 충혼탑이 대공원 안으로 이전을 했다.

지역 전사자들의 이름이 넓은 대리석에 빼곡했다.

“저기 있네.”

외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을 들고 팔을 뻗었다. 손이 닿지 않자, 엄마가 대신 손수건을 받아 외할아버지 이름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잘 계셨소.”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목소리에서 슬픔과 그리움이 전해졌다. 우리는 눈이 빨개지도록 울음을 참았다.

다음 해, 다리가 아픈 외할머니를 대신해 내가 할아버지의 빵 상자를 고이 받아왔다. 외할머니는 반갑게 받아 들고서 외할아버지 사진 앞에 정성스럽게 놓았다.

“맛있게 잡수소. 우리 헌아가 갖고 왔소.”

외할머니의 등뒤로 한복 스치는 소리만 조용히 퍼졌다.


-오래된 장면의 기억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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