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하루는 늘 새벽 5시에 시작됐다.
소금을 담아둔 병을 손바닥에 톡톡 털어 칫솔에 묻혀서 양치하고, 따뜻한 물에 가제 손수건을 적셔서 얼굴을 닦은 후, 수건으로 꾸욱 눌러 닦았다.
오래된 거울을 비스듬히 세워두고, 곱슬머리를 참빗으로 곱게 빗어서 가운데 가르마를 내어 뒤로 묶었다.
머릿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쓸어내려 묶어놓은 끝을 돌돌 말아, 낡은 은비녀를 꽂았다. 바닥에 흘린 머리카락은 주워서 양손으로 동그랗게 비벼 휴지 한 칸에 싸서 버렸다.
옷이라고는 한복 몇 벌이 전부이지만 늘 깨끗했다.
치마와 저고리는 몸에 차분하게 붙는 부드러운 옷감에 흰색 꽃 자수가 소담하게 놓아져 있었다.
하얀 양말에 버선코를 닮은 흰 고무신을 신고 법당으로 나섰다.
잠시 후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불경 소리가 작은 마당에 내려앉으면 아침 해가 뒤늦게 달려왔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독경을 읊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길고 긴 천수경을 수없이 들었어도 나는 딱 그 부분만 따라 할 수 있었다.
마법사의 주문 같아서 기억하기 쉬웠다. 한 번은 그 경전이 궁금해서 펼쳐본 적이 있는데 풀이를 해놓은 글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다 외우는지 궁금하고 신기했다.
외할머니가 법당에서 기도할 때 펼치는 오래된 공책이 눈에 들어왔다.
손님들의 주소, 이름, 생일이 쓰여있는데 종이를 덧붙여 고쳐 쓴 주소와 하얀 종이로 이름을 가려놓은 부분이 있었다.
“할매. 흰 종이 붙어있는 건.. 왜 이래?"
"돌아가셔서 가려놨지."
"이 책 내가 새로 쓸까?”
“아이고, 그리 해주면 참말로 고맙지.”
내 말에 몹시 반가워하는 외할머니 모습에 신났다. 내가 또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마냥 좋았다.
“우리 헌아는 글씨도 크고 참하네. 아이고 이것 봐라.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오네. 허허”
첫 줄부터 칭찬을 들은 나는 정성을 다해 몇 시간에 걸쳐 깔끔하게 완성했다.
공책을 몇 번이고 펼쳐보고 표지를 만져보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외할머니는 목탁을 들고 공책을 한 장씩 넘기며 기도했다.
엄숙하며 간절한 목소리는 은은한 장작불 같고, 목탁의 깊은 울림은 소나무의 향기처럼 심장을 적셨다.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 향냄새에 목과 눈이 따가워도 참는 모습에 괜히 울컥했다.
‘보는 사람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엄마는 내게 사람들의 소원을 빌어주고 무탈을 기원하는 것이 외할머니가 할 일이라고 했다.
법당을 나와 방으로 온 외할머니는 천천히 누워 이마에 팔을 올리고 한쪽 다리를 세운 채 잠들었다.
앙상한 종아리에 툭 불거진 무릎은 늘 애처롭고 불안해 보였다. 일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아 집안에서는 앉은 채 다리를 끌고 다니는 모습이 자꾸만 나를 괴롭게 했었다.
조용히 베개를 가져와 옆에 누워 외할머니의 새끼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살며시 대었다.
‘아프지 마. 할매.’
문 너머에서 멧비둘기가 운다.
-오래된 장면의 기억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