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된 나무

by 서연필

결혼식이 열흘 정도 남은 날,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했다.

“현아, 놀라지 말고 들어라. 할매 돌아가실 것 같다.”

인생의 새 출발을 앞둔 나를 두고 외할머니는 삶을 거두려 했다.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일어설 수 없었다. 지금 간다는 말에 엄마는 절대 오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무시한 채 차를 몰았다. 머릿속엔 며칠 전 봤던 외할머니 모습만 떠올랐다.

정녕 그렇게 가실 거냐고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병실에 달려가니 외할머니는 없었다.

요양보호사가 가르쳐 준 곳으로 내달렸다.

멀리 작은 병실, 침대에 누운 외할머니의 머리가 보였다. 옆에 서서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울던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 뛰어나와 막아섰다.

“니 오지 말랬는데 왜 오노!”

엄마는 울면서 나를 계속 밀어냈다. 나는 엄마를 뿌리치며 외할머니한테 눈을 떼지 못했다.

“할매 볼 거다!”

엄마는 엄청난 힘으로 나를 끌고 갔다.

“현아, 니는 할매 보면 안 된다.”

“왜 안 되는데! 할매 볼 거다!”

벌벌 떨며 우는 나를 끌어안으며 엄마도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다.

“안된다. 할매가 니 오지 마라 했다!”

그 순간, 결혼 날짜를 받던 날 외할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매사 조심하고, 지금부터는 결혼할 때까지 상갓집에는 절대 가지 마라.”

가족인데 그래야 하냐며 엄마한테 소리쳤다.

엄마는 완고했다. 외할머니 곁으로 돌아가면서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곧이어 엄마의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병원 전체를 흔들었다.

엄마를 잃은 우리 엄마의 울음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천지를 가르는 고통이었다.

내쫓긴 나는 발이 바닥에 붙어버렸다.

병실 문이 닫혔다.


외할머니는 내게 정수리만 보인 채 마지막 인사도 없이 훨훨 날아가버렸다.

내가 시집가는 건 꼭 보겠다던 우리 외할머니의 약속은, 놓쳐지는 기억을 붙잡고 또 붙잡으며 버텨온 모든 시간과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문이 다 닳아 매끈하고 가벼운 손가락을 단 한 번만 만져봤더라면.

깊은 주름과 얇은 피부의 따스한 얼굴을 한 번이라도 만져봤더라면.


엄마는 병원을 옮겨 힘들게 했던 것을 가슴 치며 후회했다. 엄마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지만, 더 하지 못한 것만 되뇌며 슬퍼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엄마는 내 이름이 적힌 하얀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유품을 정리하며 나온 지폐가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전달되었다.

앞으로는 절대 받을 수 없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새 돈이었다.


외할머니는 집 앞 사백 년 된 푸른 당산나무 같기를 바랐던 나의 바람을 뒤로한 채, 당신을 닮은 하늘색 나비처럼 가벼이 날아갔다.

나의 화사했던 세상은 흑백으로 멈췄다.

그렇지만 나를 돌아보지 말고 팔랑팔랑 행복하게 가시길 바랐다.

‘기억은 내가 할게. 할매는 잊고 편하기만 해요.’

가지 말라며 매달리던 나는 결국 외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놔드렸다.


우리 외할머니의 다음 생은 더 나은 세상에서 편하고 행복한 인생이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꼭 다시 나를 만나 짧았던 우리 사랑을 행복하게 이어가길 기도합니다.

그때까지 봄바람처럼 포근하길 바랍니다.

당신의 외손녀로 살게 되었음에 감사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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