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아 왔나.”
우리 외할머니는 모두가 ‘현아’라고 부르는 내 이름을 ‘헌아’라고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아기 때부터 ‘하나밖에 없는 우리 헌아’ 였다.
내 이름을 부르는 외할머니의 목소리에서는 늘 달콤한 꿀 냄새가 났다.
48색 크레파스를 선물로 받은 날, 나는 '에메랄드빛 녹색'에 반했다. 바다 같고, 하늘 같고, 풀잎 같은 그 색을 참 좋아했다.
다른 색보다 키가 월등히 작은 크레파스를 보며 외할머니가 다가왔다.
“요건 옥색이네. 우리 헌아도 옥색 많이 좋으냐? 할매도 옥색 좋아한다.”
난 옥색이 뭔지 몰랐다.
“아니야. 이건 에메랄드빛 녹색이라는 거야. 글씨 보이지? 내가 어른 되면 돈 많이 벌어서, 할매 좋아하는 옥색 크레파스 많이 사 줄게.”
“오야.”
외할머니는 뻣뻣하게 굳은 따뜻한 손으로 내 머리를 한 번, 또 한 번 쓸어 주었다.
따뜻한 구들방, 외할머니 옆에 누웠다.
“할매”
“오야”
“오래 살아야 돼.”
“그래야지. 우리 헌아 시집가는 거 봐야지.”
외할머니의 가볍고 쭈글쭈글한 손을 내 얼굴에 살포시 댔다. 지문이 다 닳아 매끈한 손가락, 따뜻한 손바닥의 냄새가 포근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헌아의 따뜻한 밤이었다.
-오래된 장면의 기억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