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우리가 지켜본 마지막 시간

by 김현정

지난달 말, 두 분의 어르신이 세상을 떠나셨다.
콧줄로 경관식을 드시며 삶을 이어가던 분들이었다.


어르신들의 건강은 결국 ‘드시느냐,

드시지 못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일반식에서 죽으로, 죽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면 갈죽으로,
그리고 그마저 어려워지면 콧줄을 통해

경관식을 드시게 된다.
식사의 형태는 곧 삶의 남은 힘을 말해주는

지표가 된다.


처음 요양원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간호선생님께 화를 낸 적이 있다.
“식사를 못 드시면, 어떻게 해서든 드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때 나는 그것이 어르신을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식사를 삼키지 못해 일주일 내내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시는 어르신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간호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콧줄을 하면 어르신이 너무 괴로워요. 편안하게 가시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이 그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의 요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는 실제로 경관식으로 식사하시는 어르신들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움직임조차 거의 없는 몸.
정해진 시간이 되면 콧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물론 식사는 일반식이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시고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침상에만 계시는 분들도 계신다.
겉으로는 다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경관식과

비슷한 무력감이 흐른다.


그러나 경관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어르신들 앞에서는
삶과 죽음, 연명과 고통, 선택과 책임 사이에서
정말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다.


어르신이 스스로 콧줄을 빼시기라도 하면
보호자들은 화를 내기도 한다.
“손목도 묶어놨는데 어떻게 빠지냐”라고,
“그냥 콧줄을 안 했으면 빨리 돌아가셨을 텐데…”라고
어르신 옆에서 말할 때도 있다.


그러면 평소 눈을 뜨고 움직임이 많던 그 어르신은
그 순간만큼은 꼭 눈을 감아버리신다.


그 말이 들렸던 걸까.
그 마음이 닿았던 걸까.


그리고 결국, 어르신은 얼마 후 세상을 떠나셨다.
며칠 뒤, 그 옆 침상에 계시던 어르신도 뒤따라 떠나셨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도
눈을 크게 뜨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깊이 눈에 담고 가셨다.
그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랜 요양원 생활 끝에 지쳐버린 보호자들의 마음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몸으로
차갑고 얇은 관을 통해 들어오는 경관식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르신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에 무너지는 듯한 슬픔이 내려앉는다.


가족과 함께 살던 어르신들이 요양원에 오시면,
그 순간부터 어르신의 가족은 우리 직원들이 된다.


숨을 거둔 어르신의 몸을 닦고
굳어가는 손가락을 조심스레 펴며
요양선생님들은 눈물을 훔치며 기도한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히 쉬시기를…”


그 기도는
이곳에서의 고단한 삶을 지켜본 사람들이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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