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멈춘 것은 마음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 안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멈춤이 있었다.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이야기들 앞에서
나는 종종 발걸음이 멈췄다.
이해가 닿지 않아 멈춘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멎는 순간들이 있었다.
중학교 즈음이었을 것이다.
교과서 속에 실린 다운증후군 아이의 얼굴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없었다.
두려움도, 연민도 아니었는데
그 얼굴 앞에서 시간만 잠시 내려앉은 것처럼
나는 한동안 그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그 얼굴은 오래 남았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도 혹시 같은 일이 일어날까 하는 걱정은 아니었다.
그저 설명되지 않는 끌림이었고,
이름 붙이지 못한 채
마음 한쪽에 가만히 눌러앉은 멈춤이었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펄 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고요해졌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문장을 다시 만난 것처럼
나는 또 한 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십 년이 흘러
나는 다운증후군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많이 아팠다.
수술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의 얼굴은
코와 입이 솜으로 틀어막혀
흡사 송장 같았다.
숨을 멈출까 봐
열 개가 넘는 약으로 아이를 재웠다.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며
나는 매번 확인했다.
지금 숨을 쉬고 있는지,
다음 숨은 올 것인지.
그 시간 동안
아이의 삶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잘 자라길 바라지도,
평범하길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만 주기를.
그리고 한 달 후,
아이는 기적처럼 깨어났다.
기적이라는 말을 믿지 않으려 했지만
그때의 나는
다른 단어를 알지 못했다.
오늘도 아이는 찬송을 부르고 기도한다.
아침과 저녁,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예배를 드린다.
찬송을 부르다 말고
내 눈을 바라보며 같이 부르자는 신호를 보낸다.
기도 순서가 되면
어김없이 내 이름을 부른다.
솔직히 말하면
그 모든 순간이 늘 좋지만은 않았다.
기도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찬송이 공허하게 들릴 때도 있다.
믿음이 답처럼 느껴지는 날보다
질문처럼 무거운 날이 더 많았다.
나는 여전히 모른다.
내 삶에 일어난 많은 일들이
이미 예정된 길이었는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진 시련인지.
혹은
내 고통을 통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알아보라는 뜻인지.
오늘도 나는
자주 꾸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무수히 많은 벌레들이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내 몸을 덮쳐오는 꿈.
그 벌레들은
아직도 매일 두렵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과 말들,
떼어내도 끝없이 달라붙는 것들.
아마도 그것들이
벌레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아이도 벌레의 공격을 받는다.
나는 울면서, 울면서
몸에 붙은 것들을 떼어내며 기도한다.
살려달라고.
깨어난 뒤
나는 아이의 숨소리를 듣는다.
느리고 고른 호흡,
작은 가슴의 오르내림.
그 움직임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안심한다.
아이는 오늘도 찬송을 부른다.
음정은 자주 흔들리고
가사는 종종 어긋난다.
그래도 아이는 끝까지 부른다.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 옆에 앉아
같이 부르다가,
가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소리를 듣기만 한다.
나는 아직도
그 멈춤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피하라는 신호였는지,
미리 알게 하려던 예고였는지도.
다만 분명한 것은
그때마다 나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믿음이란
확신이 생기는 일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순간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그리고 그 멈춤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