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기리며

너무 늦은 안부

by 김현정

나는

아빠를 미워하는 법부터 배웠다.

그건 감정이 아니라

집 안의 공기 같은 것이었다.


아빠는 집 안에 있으면서도

늘 문 쪽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몸은 방 안에 두고

마음은 이미 신발을 신은 채였다.


엄마의 울음은

저녁마다 식탁에 놓였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나는 그 소리를 익혔다.

미움은 그렇게 조용히 옮았다.


하지만 어느 날까지,

아빠는 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다.


아침마다 등을 보이며

집을 나서던 뒷모습,

문이 닫힐 때 남기던

묵직한 소리.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밤,

잠든 아빠가 좋아

나는 그 곁을 떠나지 못했다.


아빠의 팔은

늘 하늘로 통하는 길이었고

번쩍 들어 올려질 때마다

나는 세상이 넓다고 믿었다.


아빠의 손바닥 한 뼘이

내 발의 크기라며

신발을 사 오던 날,

세상은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손이

엄마를 아프게 했을 때

나는 아빠를 미워하기로 했다.


첫째라는 이름의 무게가

내 어깨에 먼저 얹혔고

나는 말로, 때로는 몸으로

아빠를 막아섰다.


집 안에는 미움이 늘어났고

아빠에게 집은

더 이상 쉬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아빠는 집을 떠났고

집은 아빠를 잃었다.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흘렀고

아빠는 집이 아닌 곳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자식이 셋이나 있으면서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끝내 삼킨 사람.


삶의 모양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며

살아보려 했던 사람.


아빠의 죽음은 너무 커서

아무도 입에 올리지 못했고

빈자리는 말없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아빠를 생각한다.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 외로움을

말로 풀어놓을 자리가

있었다면 어땠을지.


나라도 한 번쯤은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지.


사람의 삶은 멀리서 보면

늘 단순해 보인다.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구김들이 있다.


멀리 있을 아빠를 생각하며

그곳에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평안 속에 머물고 있기를.


나는 오늘 말 대신

기도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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