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도록 설계된 삶
그들은 불편함을 모른다.
원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고,
얻을 수 없는 것은 애초에 욕망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멋진 신세계』 속 인간들에 대한 설명이지만
나는 요즘 이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
하루가 정해진 시간표대로 흘러가고
불편함은 미리 제거되며
선택은 최소화된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고
예측 가능함이 미덕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용해질수록
‘잘 지내고 있다’고 기록된다.
얼마 전, 한 가족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빛에는 이미 여러 밤이 지나가 있었다.
남편을, 아버지를 돌보다
지치고 지쳐
마지막 선택처럼 그들은 이곳을 찾았다.
입소 첫날의 어르신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몸에서는 냄새가 났고
눈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은 채 비어 있었다.
낯선 공간에 놓인 어르신은
손을 휘두르고 소리를 질렀다.
자신을 만지는 손길을 거부했고
그 모습은 돌보는 사람에게도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돌봄은 언제나 따뜻한 얼굴만을 하고 있지 않다.
현장은 때로 날카롭고, 버겁다.
그러나 눈물을 보이며 돌아서던 가족의 등을 떠올리며
우리는 다시 어르신 곁에 선다.
식사를 돕고
몸을 닦고
이름을 불러본다.
아주 천천히,
하루씩.
며칠이 지나면
어르신은 숟가락을 들고
눈을 맞추고
짧은 말을 건넨다.
“여기가… 어디야? 요양원이야?.”
그 말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체념이 있었는지
우리는 안다.
어느 순간부터 어르신은
잠을 조금 더 깊이 자고
돌봄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마침내
어르신도, 가족도
웃으며 다시 만나는 날이 온다.
그때 우리는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평온은
행복일까,
아니면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일까.
『멋진 신세계』의 인간들은
질병도, 늙음도, 가족도 모른다.
그래서 고통은 없지만
사랑으로 인한 흔들림도 없다.
이곳의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아프고, 기억하고,
관계 속에서 늙어간다.
우리는 고통을 덜어준다는 이름으로
삶을 정돈하고
감정을 낮추고
욕망을 눕힌다.
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은 묻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이란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상태인가.
아니면 아픔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로 남아 있는 상태인가.
오늘도 이 공간의 침상 위에는
그 질문이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