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15. 2024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들지 않았던 이틀

수면제를 달고 사는 이의 고통 속에서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들지 않아서 꼬박 밤을 새 가면서 일을 한 적도 있고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나는 어둠이 들이닥친 밤마다 외로움을 달래느라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글쓰기가 나에게 훌륭한 친구가 되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겸, 나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던 유일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글들은 색이 다채롭다. 파란색 색안경을 끼고 보아도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어쩔 때는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철자들이 변신해서 내 곁에 다가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글은 가장 신비로운 존재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어떤 장르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을 꽤나 했다. 그러다가 김영하 작가의 철학을 조금씩 방송에서 보고  나는 처음에 인문학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문학은 상상의 폭이 정말 넓었다. 사람이 인문학 교양책으로도 이렇게 상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이 살아온 역사는 방대했다. 현대인들의 사고는 깊이가 있어서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인문학을 읽다가 보면 모르는 사람들의 도전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어설프게 읽었지만 감명받은 글이 있었으니 그것은 우울증에 관련된 시리즈였다. 우울증 시리즈의 글들을 보면 참으로 보통의 삶을 살기가 이리도 힘들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현대인의 경우에는 그들의 도전일지들이 매우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화장실까지 나와서 자신을 꾸미는 일을 하는 행위 하나도 하기 힘들어 보였다. 거울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를 마주하는 일이 우울증 환자들한테 거대한 장벽이었다. 거울을 맞이한 그들에게 나는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하루를 지내더라도 자신의 우울늪에 빠져서 발버둥 쳐도 내려앉기만 하는 그 기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글로 자신의 상황을 쓰고 회복하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뭉클했다. 다양한 인문학책 중에서 에세이집, 그중 우울증 관련된 서적은 인생의 짠맛과 고소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짜디짠 바다에서 어떻게 고소한 참기름냄새가 풍겨오는지 궁금했다. 그들의 빗지 않은 머리카락에 떨어지는 참된 글들 안에서 눈길이 가는 문구들마다 고소함이 풍겼다. 그 고소함에 묻히고 싶어서 나는 우울증 책을 그리도 많이 읽어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완독 하자 아쉬움이 너무나 남았다. 그 용기의 고소함이 나에게는 잔잔한 하늘 같았고 그들의 글은 나에게 영웅이 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다가 보면 새벽이 되기 일쑤다. 나는 그래서 수면제를 챙겨서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다. 수면제는 참으로 기괴하다. 나랑 잘 맞으면 어느새인가 눈 감으면 잠이 들어서 새벽 같은 아침을 맞이해 추위를 느끼며 이불을 더 껴앉게 되는데 맞지 않는 경우는 서울의 별빛 하나 없는 하늘을 읽으며 가끔 보이는 구름 수호신을 휘저어본다. 설탕가루 푸듯이 구름을 뒹굴리다 보면 분홍색 보라색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다음에 하늘색 도화지가 펼쳐진다. 그러면 내 수면은 역시나 오늘도 막혀버렸고 하루를 다시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 앞에서 일어선다. 스트레칭을 한다. 그래도 몸이 풀리지 않는다. 스프링이 끼어버린 뇌 속이 그나마 녹아내린다. 두통은 있지만 그래도 활기차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나의 글은 이어진다. 속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하루는 버리지 않고 온전히 내가 누렸기 때문에 마음을 달래 본다. 옆에 곤히 자고 있는 주름진 우리 엄마를 보며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바스락거려본다. 그러면 엄마도 나 때문에 깨버려서인지 어느새 같이 계란을 풀고 있다. 나는 우리 엄마를 고의적으로 깨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불효녀다. 수면제를 먹어도 못 잤다고 말하고 나서의 엄마의 표정에 근심이 채워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를 앉아주면서 활짝 웃는다. 그렇게 2번의 하루가 시작된다.


다음 날의 밤이 찾아왔다. 오늘도 우울증 관련된 책을 읽어본다. 그렇게 몇 권의 문턱을 읽다가 보면 시간은 한 시가 넘어있다. 오늘도 여러 개의 수면제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기도를 한다. 어제 못 잤던 잠을 오늘은 온전히 누리기를 바라면서 약을 삼켜본다. 책을 다시 읽는다. 이번에는 마케팅 관련한 책이다. 한동안 마케팅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서 읽었는데 그다지 나에게 흥미를 주지 않았다. 사람의 돈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심리를 너무나 완벽히 파악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활자들이 뛰어들다 보면 활자들이 다시 잔잔하게 가라앉기도 한다. 나는 그때 몽롱한 상태로 누워본다. 어제 잠을 못 잤기 때문에 그래도 나는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양치질 속에서 하얀 거품들이 다시 입안을 맴돌며 잠을 은근히 깨운다. 박하사탕의 향이 오히려 거슬린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나의 중학교 시절에 있었던 골키퍼역할을 맡은 내가 골을 잡자마자 세리머니를 받았더라면 지금의 자존감이 높았을까? 나의 성적이 원래대로 모범생처럼 나왔다면 나는 학생회장은 한 번 임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의 살아온 인생의 빚들은 빛으로 바뀌어 생각의 장벽이 높아졌을까? 꿈속에 나오는 내가 더 이상 시험에 버둥거리지 않아 했으면 좋겠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나는 오른쪽 후두 쪽에 지끈 간지러워지고 뒤척인다. 수면제 효과가 슬슬 오기 시작했나 보다. 나한테 걸려오는 주문이 눈주위를 연기로 감싼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잠에 빠져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기업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찾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