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열자

전시회를 열 것인가

by 후드 입은 코끼리

솔은 자신의 다양한 형태의 명화를 보자마자 충격을 받았다. 시그니처인 빨간머리와 붉은 입술을 놓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그림을 그려왔던 것이다. 그런 그림들을 방안에 한구석에 쳐박혀있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솔은 그림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살펴보았다. 자기 자신의 실연이 되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부터 시작해서 솔의 죽음과 행복 모든 주제를 다룬 화가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그림과 함께 살아왔고, 집중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불구인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솔은 그 그림들의 스캐치부터 채색 그리고 액자까지 신경써서 걸어놓기도 하고 한 구석에 박혀있기도 한 그림을 최대한 많이 보려고 노력했지만 반나절만에 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채광이 부족해서인지 그림들이 다 어둡게만 보이기도 한 탓도 있었다.

"송화님......"

"네?"

"이 그림들 부산에 전시회 열어서 보면 좋을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 안 하세요?"

"전에도 한번 해봤지만, 아류작이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요"

"그렇지만 그 아류작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들 아닌가요? 뭐든 생명체도 그렇게 실패를 거듭나서 태어나는 것 같거든요"

"네?"

"생각해보면, 진화론적으로도 보면요, 우린 작은 세포에서 원자에서 시작되었는데 어찌되다보니까 인간이라는 형태로 왔잖아요. 송화님 그림도 그렇게 보여요. 처음에 나로 시작했지만 완성은 결국 철학으로 끝맺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송화는 가장 최근에 그린 작품 중 하나를 들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를 한 솔을 으린 그림으로, 솔의 검은색 머리와 빨간 머리 반반 그려놓고 큰 스웨터와 고양이를 앉고 있는 그림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밝은 햇빛이 비추어서 그림을 그렸지만 어두운 느낌나게 얼굴은 음영을 넣었다.

"이런 그림도 통찰에서 나온 그림들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마 몇몇 갤러리 운영자들은 송화님의 그림을 무척 탐낼 것 같아요. 현관에도 걸어놓기 좋은 가벼운 작품도 있어서 좋고요"

또 솔은 그림들은 천장까지 붙여져 있는 것부터 커튼 사이사이에 그려져 있는 자신을 그린 것을 보고 감탄했다.

"스토킹 같아보이지 않으세요?"

송화는 머리칼을 넘기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송화는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솔은 그런 송화의 오른손을 잡아주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근데 저는 뮤즈였잖아요. 저랑 약속한 것들이었는데 연장선이었나보다 하고 생각하면 끔찍하지는 않아요. 그림들이 너무 풍미가 가득해서 저는 감동적이기도 해요."

송화는 멀찌감치 그림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일부로 작은 스케치도 있었는데 그 작은 스캐치들을 절대 잡지 않고 섬세하게 눈으로 관찰하기만 했다.

"제가 아는 부산에 친구가 있어요. 갤러리를 한다고 했긴 했는데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지인이라고 해두죠. 지인이 있는데 그 지인한테 연락해볼게요. 거제도에 이런 화가가 있다고"

"안돼요. 저 아직 자신이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어요. 제 작품이 과연 어딘가 걸릴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송화는 안달복달하면서 휴대전화를 빼았았다. 송화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서 자신의 작품이 마치 불 타 없어진 양 무섭게 쳐다보았다. 송화는 손을 덜덜 떨었다. 송화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저는 한참동안 해매면서 살고 있어요. 아직도 길을 못 찾아 방황을 많이 해요. 저는 작가가 진정으로 될 자격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해왔지만 결국 작품을 내놓지 않으면 작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닳은지 오래죠. 그래도 그 평가를 얻고 싶지만 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의 눈엣가시가 되어서 하나의 조롱거리가 될 용기가 부족하죠. 저는 계속 방구석에서 그림을 그리고, 저의 안정된 직장으로만으로 살 수 있는데 그것이 모자르다고 생각하기도 싫었어요. 계속해서 길을 잃고 그림을 그리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오늘도 솔님을 그렸는데 매일매일 솔님은 변해요. 저에게 솔님은 무한이고 우주에요."

"저는 송화님이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이 작품들 또한 기회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캔버스를 비워내고 또 그려야 우주가 탄생하는 것 같은 이치에요. 저는 송화님이 화가로서 자질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이 든 것은 만나자마자 였다는 거 믿겨지세요? 그러니 송화님 저랑 같이 부산으로 올라가서 전시회를 열어보아요. 어떤 생각이 들지 너무 궁금해요."


솔은 다시 송화의 손에 있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빼앗은 후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개의치 않게 거는 모습에 송화는 당황스러웠다. 밤에 전화하면 어떻게보면 무례한 사람이라는 사람이 들텐데...... 솔은 그런 생각도 일체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친구는 늦은 시간에도 자지 않고 있어서 전화를 받았고 둘은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송화는 그런 대화내용을 듣기 싫어 일부로 밖을 나와서 서성거렸다. 고양이 두 마리를 발견하고 먹이를 주러 잠깐 집에 들르기도 했지만 결국 한 시간 정도 밖에 나와있었다. 솔은 친구한테 사진을 찍어가면서 작품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송화는 자신의 집이 혐오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눈물이 가득 고여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송화는 그래서 20분동안 더 서성거리다가 겨우 집에 들어가서 캠버스와 물감을 들고 그림을 그리러 나왔다. 밤의 공기는 갈수록 싸늘해졌다. 그래도 송화는 춥지도 않았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자신의 혼란스러움과 솔의 행위. 솔의 과감함과 동시에 무례함을 그리고 싶었다. 나를 생각해줘서 하는 행위인데도 불쾌함이 섞여서 검은색 페인팅 위주로 그림을 그렸더니 반 고흐도 무색할 정도로 어두운 그림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 그림을 펼쳐서 볼 때 자신은 까마귀가 직접 날아들어오는 듯한 그림으로, 강렬하고 놀라웠다. 송화 자체도 자신의 감정이 보이는 그림을 그려왔지만 오늘같은 그림은 천재적이게 느껴졌다. 그 그림을 들고 송화의 집에 다시 들어갔다. 솔은 그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친구가 지금은 전시회를 열고 있는 상태가 많아서 내년 1월이면 전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6개월동안 더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리고 긍정적인 반응이었어요. 그러니, 우리 한번 해봐요. 방금 너무 무례하게 전시계획을 잡아버린 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도 이 그림들 소각될 바에 저는 한번쯤은 대중들의 눈으로 버려졌으면...... 아니 찬송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송화님 오늘은 잠 잘 주무시고 제가 자주 놀러올게요. 거제도로."

"솔님 감사해요. 그리고 정말 혐오스러웠어요. 솔님이 미웠는데 지금 보니까 저도 모르게 감정이 섞여버린 그림들이 많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그 감정은 그리움이었던 것 같아요. 솔님을 뵈니까 안정적이게 또 그림을 그릴 것만 같아요. 솔님 저의 뮤즈여. 고마워요. 전시회 제안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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