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재회 오랜만의 재회

by 후드 입은 코끼리

송화와 솔은 갑작스럽게 작은 동네에서 만났다. 그들은 작은 동네에서 부딪치고 싶지 않아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않았던 둘이었다. 솔은 자신이 거제도에서 나가서 살아야 헛소문이 더 이상 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섬을 떠나 도시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다니던 공무원 일도 그만두고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도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더 이상 자신을 지키며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솔은 그래서 밝지만은 않은 형식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갔다. 좋아하지 않는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요가 강사가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선택권이 없었다. 그저 그녀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무조건 잡아서 정신을 사납게 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한동안 뮤즈였던 시절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거제도에서 놓고 온 송화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송화가 밉기도 했지만 송화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송화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자신이 화가라는 것을 밝히지 않아서, 밉살스러운 별명을 갖게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이 해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명 하나만 했다면 조금이라도 괜찮아졌을 수도 있지만, 송화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예술이 더더욱 중요했던 사람인지라 사소한 가십거리에 휩쓸리지 않는 바위였다. 솔은 바람과 같은 존재였다. 바람처럼 날리면 날리는 대로 살아가는 한낱의 서풍에 불과했다.

솔은 5년이 지난 이후, 거제도의 안부가 그리워졌다. 거제도의 아름다웠던 환경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조금만 걸으면 바닷가에서 술을 마셔도 전혀 게이치 않는 장소였다. 자갈 굴러가는 소리와 울렁거리는 파도의 거품들. 그 거품을 머금고 탄생한 송화와의 관계가 독 같아도 희망찼다. 솔은 자신의 과거가 가끔 그리웠다. 자신감 차 있던 시절에 어떻게 사람들의 말소리 하나 안 듣고 살다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사람이 변해버린 것일까? 혹시 묵혀 놓았던 자신이 사실은 말소리를 듣는 사람인데, 듣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있다가 폭발해버린 것 아닐까도 싶었다. 솔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솔직한 사람이 되는지 궁금했다. 머리색으로 자신을 판단했는데 그것이 정녕 방법이었던 것일까? 솔은 그래서 거제도로 3박 4일 떠나기로 했다.

솔은 거제도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다녔던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송화와의 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가끔 스케치가 끝나고 밑그림 작업이 시작되는 시기마다 축제 분위기로 환기시키는 장소였다. 그 편의점은 여전히 바닷가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밤에만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술로 매대가 가득 차 있었다. 솔은 자신이 마시던 맥주를 하나 집고 계산을 했다. 그때 송화가 솔이 있는 편의점에 들어왔다. 송화의 왼발은 보이지 않았다. 바지가랑이 끝에는 너풀거리는 끝자락만 존재했다. 송화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온 것이었다. 신발도 한 켤레만 신고 있었다. 솔은 너무 놀라서 화가 났다. 왜 송화의 모습이 이렇게 처참하게 변했을까? 어떻게 바다 많고 고개 많은 곳에서 이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남겨졌다. 솔은 황급히 술을 내려놓고 송화의 안녕을 물었다. 하지만 송화는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버려진 사람인지라 말수가 줄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 하는 불구가 되었다. 솔은 송화가 정신적으로도 피폐한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솔은 술을 사지 않기로 하고 송화랑 같이 바닷바람을 쇠자고 말했다. 그러자 송화는 끄덕이며 전동 휠체어를 끌고 나갔다. 바퀴는 많이 낡았지만 제구실을 하는 편이었다. 험악한 곳을 다니는지라, 바퀴가 꽤나 묵직하고 튼튼했다. 전동 휠체어에 타고 있는지라 근육이 많이 빠졌다. 창백을 넘어서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보다 하얬다. 그래서 솔은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송화의 모습은 처참했다. 자신은 머리색을 바꾸고 몸매도 아름다워지고 형식적으로는 정상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솔은 그런 송화에게 어찌되었는지 자초지종 물었지만 송화는 그저 솔을 만나서 반갑다고만 말했을 뿐. 그 이하의 이야기들은 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다. 5년간의 세월을 묻는데도 송화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신의 괴로웠던 과거를 풀어놓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송화가 차츰 단어 몇 가지를 말하면서 사건을 유추할 수 있었다. "바다, 화강암과 산호초"를 반복했다. 그는 아마 산호초에 발이 걸려서 숨 막히는 경험을 한 모양이다. 산호초의 단어를 말할 때 숨을 헐떡거렸다. 솔은 눈물이 저절로 났다. 어찌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결과론적으로 그는 불구에다가 말을 못 하는 벙어리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그는 왜 편의점에 온 것일까? 솔은 궁금해서 천천히 되물었다. 그러자 송화는 씩 웃으면서 "술"이라고 답했다.

송화는 솔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송화는 계속해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솔은 그를 따라갔다. 아직도 노란색 벽돌집에 살고 있었다. 송화는 그때 구부정했던 대문은 없앴다. 자신의 휠체어가 잘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그 길은 유독 잘 닦여 있었다. 송화는 살기 위해서 거제도를 고치고 있었다. 송화는 자신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목발을 짚었다. 짚고 일어나서 보니 그 한 칸짜리 방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솔은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솔을 그리고 있었다. 솔을 상상해서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솔이 없어도 솔이 머리카락이 무지개색이라면 어떤 사람일지부터 시작해서 귀족적인 옷풍을 입은 솔 등 다양한 솔의 모습으로 있었다. 솔은 눈물이 왈칵 나면서 송화를 안아주었다.


이전 08화송화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