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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그리고 우울증, 하지만 회사

by 후드 입은 코끼리

푸른 빛을 띠던 여름결에 찬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이었다. 흐리멍텅하게 구름은 먹구름으로 가득 메워지고, 사람들은 회색 우산을 쓰고 다녔다. 투명 우산 창에 비친 쇠창살 무늬는 하늘에서 볼 때 마치 사람을 우산 안에 가둔 것처럼 보였다. 비스듬히 45도 각도로 볼 경우에는 우산살이 목구멍에 달려들 것만 같았다. 나의 우울증은 모든 사물을 하나의 죽음 도구로 보게 만들었다.


5시가 되기 전에 기상하여 스트레칭을 해보고 상쾌하게 눈을 떠보려 하지만, 약에 취해서인지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창문 밖 비둘기들이 구구 소리를 낸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매미의 울음은 멈췄다. 허겁지겁 시간을 보니 아직 5시가 되기 10분 전이다. 팔다리가 쑤시고 팔마디의 갈라진 선마다 칼이 덧대어진 듯 아팠다. 원래 조립해서 만든 사람인데, 그것을 억지로 돌려 윤활유도 없이 빳빳하게 만들다 보니 고장 난 것이다. 마디에서 굵은 ‘뚝’ 소리가 난다. 눈꺼풀 또한 건조하게 메말랐다. 입술은 말할 것도 없이 타 들어갔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후레하고 거추장스럽고 쓸데없는 듯했다.


그 쓸모없는 인간이 회사의 부품으로서 일하러 나가려 하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오늘도 나는 내 자신을 죽이고 문제의 회사에 들어가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다양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정부가 만든 쓸데없는 기본틀 안에서 움직이는 머펫일 뿐이다. 목각인형이 딸그락거리며 움직이고 타이핑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숨은 여전히 막혀 있다. 숨 쉬는 방법조차 잊은 지 오래다. 속살맞은 사람인지라 잠이나 자고 싶다. (그렇다고 잠을 개운하게 자는 것도 아니다.) 방황하는 눈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소곤거리는 사람들의 가십에 머리카락이 움찔 선다.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려 립스틱으로 하늘 위로 선을 그려 올린다. 조커처럼 웃음을 그려본다. 소용없다.


알고 있다. 그래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회사생활이다.


구부정한 자세로 눈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본다. 나의 본분을 잊은 채 한없이 헤아리다 결국 탈출을 시도한다. 화장실, 복도, 심지어 카페까지. 그런데도 숨은 트이지 않는다. 사실 숨은 폐로 들어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뇌로 공급되지 않는 느낌이다. 머리가 핑 돈다. 갈수록 더하다. 웃음 하나 없이 살고 웃음기 싹 사라진 채로 일하다 보면 어느새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다. 죽음과 조우한 뒤 그의 품에 안기고 싶어진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해독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허리는 프리다 칼로처럼 부서지고 정신은 온전치 않은 고흐 같지만, 나에게는 천재성 하나 부여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인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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