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살아가다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
어머니는 나에게 언제나 한 가지 명심하라고, 마음속에 새기고 다니라고 했던 말.
"베풀고 선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복이 그러면 돌아올 것이야. "
그 한 줄의 명언으로 나는 콩 한쪽도 친구에게 나눌 줄 아는 선행아이로 거듭났다. 학교에서도 나를 좋아했다. 친구들도 나를 사랑해 주었다. 그 당시에 사랑받기 위해서는 "나"를 줘야만, 팔아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작은 재산덩어리를 체인소어로 나누듯이 갈라서 줘 버린 적이 너무 많다.
빚 보증도 서주기도 했고, 몸을 아픈 친구한테는 내 장기를 기증할 만큼의 일들까지도 적잖이 해왔다. 큰 수술을 앞두고 친구는 고맙다면서 피눈물을 흘렸지만 이내 친구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 너무 허무했다. 그의 죽음사인은 급성알코올중독이었으니 말이다.
어릴 적부터 가난하게 살았다. 그래서 더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 나 같은 사람은 넓은 그릇을 갖기 위해서는, 부자들의 가지고 있는 여유로움을 가지기 위해서는 "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부모의 말씀, 선생의 말씀을 들으며 50 평생을 살아왔다. 나의 여유 자금은 오직 1천만 원뿐. 주거지역은 여전히 달동네에 언덕 위 꼭대기. 절대로 산타가 올 수가 없는 가난의 지옥이다.
나의 지옥이 언제쯤 끝이 날까. 나는 극도의 궁핍함에 의해 오히려 도움을 받는다. 도움을 받는 것이 결국에는 알았다. 너무나 치욕스러운 동정이었음을. 남들이 벌레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삿대질하며, 나에게 풍기는 악취로 눈을 질끈 감는다.
가난한 꿈을 구웠다.
그 가난이 나에게는 우울함과 같았다. 내 우울이 너무 지독한 나머지 남들에게 일부로 나누고 다녔다. 나는 우울증 환자이니, 나는 이런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일부로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나는 우울증을 당당하게 외쳤다. 오히려 나는 절대로 기죽지 않기 위해 자신감을 가졌다. 그런데.... 실상은 치욕스러운 동정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산타는 가난한 아이한테 오지 않는다. 산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 산타는 우울한 아이에게도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