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겉핥기

달달한 수박 찾는 여정

by 후드 입은 코끼리

우리는 더위를 너무 먹게 된다. 한여름에는. 한여름의 폭우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맑게 갠 하늘 밑에 사람들은 무더위에 지쳐서 수박을 찾는다. 한 사람 말고 모든 사람. 서울사람, 부산사람, 재미교포까지 모두 다디단 수박의 즙을 빨아먹고 싶어 한다. 그 즙에서 나오는 달콤함은 농부의 구슬땀으로 만들어졌다. 그 땀방울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수확해서 올려버린 마트의 장바구니. 장바구니에 넣기 전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수박을 두드린다.


통통인지 텅텅인지 혹은 빵빵거리는지 소리를 듣고는 알게 모르게 끄덕인다. 어린 꼬마아가씨도 재미 삼아 수박을 톡톡 두드려본다. 이 수박은 통통 소리가 나기 때문에 꽉 찬 즙이 많을 것이라고......

우렁찬 수박을 빨간 노끈으로 묶어서 낑낑거리며 집으로 향한다.


수박을 반으로 갈라보니, 이게 웬걸, 수박이 밝은 붉은빛은커녕 허옇게 뜨다 만 수박이었으니.... 낭패를 보았다. 비싼 값 주고 사온 수박을 어찌 버릴 수도 없고 이 많은 것을 해치워야 하니 여름날 짜증이 확 밀려온다. 수박 장수에게 한마디 톡 쏘아붙이려다가 만다. 그도 알았을까. 수박장수는 피땀눈물을 흘리며 만든 수박이 밉상으로 보일지 알았을까. 그는 봄에도 겨울에도 수박을 위해서 거름을 거두고 물을 머금은 흙을 덮어두었다.


그렇게 수박을 우리는 오로지 텅텅 소리로만, 판단하는데.... 우리는 그 농부의 흙 묻은 손가락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다디단 수박의 수확이 맛이 있을 경우, 가끔 그의 노고에 감사함을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그렇게 사랑스럽게 농부를 생각하지 않는다.


수박은 그렇게 허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을까? 자신도 과육이 가득 담긴 채, 속살이 부드럽게 치장한 달콤으로 태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허점이 많은 것을 어떻게 하는가. 자신은 버려질 존재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수박과 우울증은 공통점이 있다. 수박의 허연 부분이 우울증의 단면이자, 적나라한 사실이다. 그것을 맞이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 반응은 냉담하다. 붉은 과육의 참맛을 아는 대중들인지라, 우울증에 과육이 없어진 지 오래된 사람을 보면 꺼리게 된다. 대중은 동정은 하겠지만, 그 동정이 허용범위를 넘어가면 이제 그 부모와 환경을 보면서


"저러니 저렇게 되었지"


하면서 뒤돌아서 욕한다. 수박의 상태를 보고 이제 농부의 고생은 생각하지 못하고 욕하는 것이랑 같은 이치.


나는 그런 하얀 수박이라고, 통통 소리가 잘 익은 듯하게 나지만 허옇게 떠버린 수박임을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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