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따돌림 당해봤어? 나는 당해봤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는 선생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나는 선생님의 존재는 가르쳐 주고 인도해 주는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여자애들이 무리지어 나를 화장실로 데려갈 때…
잊을 수 없는 그 떨림과 공포감.
아이들이지만, 나에게 칼을 들이미는 것이나 다름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이들인지라 옷은 형형색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특히 아이들은 스누피나 미키 마우스 등의 캐릭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혼자 분홍 바지에, 무늬 없는 티셔츠에 분홍색 헤어밴드를 착용했다.
아이들은 나를 비꼬면서 밀쳤다.
“너 그래서, 아까 수업 시간에 발표한 내용, 틀렸다고 말해 주고 싶어서 불렀어.
너 앞으로 나대지 마.”
무리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가 말했다.
그녀는 조숙한 편이었는지라 이에 교정기를 끼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나는….”
어물쩍거리면서 다리를 꼬았다.
“너 똑바로 서. 우리가 너 괴롭히냐?”
하면서 꺄르르 웃는 그 무리의 아이들.
아이들의 웃음은 악랄했다.
하지만 그 속의 웃음은 마치 악의가 없다는 듯 순수했다.
그 순수함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눈물이 눈알에서 주르륵 떨어졌다.
이윽고 선생님이 화장실에 들어와 놀라시며 우리를 불렀다.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니? 이리 오렴!”
나는 구세주가 나타나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은 그러나 내 발걸음의 힘찬 모습에 “쳇” 한마디를 던지더니 내 어깨를 치고 나섰다.
그리고 뒤돌아서면서 나에게 손가락 욕을 하고 지나갔다.
나는 그 모든 만행을 찍을 수 있는 바디캠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싶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지만 2000년대는 그런 상상도 할 수 없는 걸? (화자인 2025년이 말한다.)
나는 담임이 앉는 교탁 쪽으로 당당히 서 있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어쩐 일이냐면서 물었다.
“아니, 00이는 국어 시간에 발표한 ‘이’에 대한 표현이 틀렸다고 말해 주고 싶어서 불렀어요.”
키가 큰 교정기 여자애가 말을 이어 나갔다.
“사람한테는 ‘이’로만 표현해야 한다잖아요. ‘이빨’도 표현 가능한 거 아닌가요?”
하면서 모든 여자애들에게 얼굴을 돌려가며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이 인터넷으로 한 번 쳐 보고 말해 줄게.”
선생님이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여자아이들의 갈등을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셨다.
그러자 나는 한숨이 내려앉았다.
아버지가 당시에 문학책을 많이 읽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항상 사람의 표현과 동물의 표현이 나뉘어 있다고 가르쳐 주셨기에
나의 말이 분명 옳게 흘러갈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2025년의 화자는 이 회상을 하면서 “ChatGPT가 있었더라면 나는 이 상황에 놓여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인터넷에 검색을 하시더니 조금 있다가 말씀하셨다.
“00아, 유연하게 그냥 사람한테도 ‘이빨’로 표현할 수도 있지. 그게 뭐 별일이니?
이렇게 유별내지 말고 살면 안 될까?”
하시며 나를 다그쳤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선생님께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려는 순간,
“아니, 너 앞으로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러지 말도록 하렴.”
하고 끝내버린 나의 억울한 잔혹사.
아직도 5학년의 학교폭력이 생생하다.
그 학교폭력, 나만 당한 걸까?
사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당했을 것이다.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래서 환상을 가지고 살았다.
마치 나는 신데렐라니까 미움을 받고 욕을 먹고 사는 것이고,
더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한 역경을 거치는 것뿐이라고.
그 긍정적인 회로가 오히려 아이들의 화만 돋우었다.
여자아이들의 따돌림에서부터 시작해서,
결국에는 남자애들이 나를 무자비하게 발로 차고 때리기 시작했다.
그랬던 내가 학교를 다닐 때, 피멍이 가득히 들어서 바지로 덮느라 바빴다.
엄마에게 결국 이실직고했지만, 학교에서는 방관하지 않았다고 말뿐이었고 사과도 듣지 못했다.
그때 아이들은 나에게 미안해할까?
특히 나는 아이들보다 선생님에 대한 인식이 무척이나 바뀌었다.
선구자이자 지도자로 바라보았던 우상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의 자격이 부족한 사람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특별함을 알아봐 주지 못하고,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선생이었다.
나는 그런 선생을 보고 밤낮없이 고민했다.
내 자신에 대한 미움이 늘어갔고, 그때부터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다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들의 평행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국 학교와 달리 여기는 한국 학교였다.
그래서 나는 6학년부터 평행선을 지키며 살았다.
그러나 나의 주홍글씨는 쫓아다녔다.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과 같은 반으로 올라가면서
다시 나의 학교폭력은 시작되었다.
더 이상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학년이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
나는 그럴수록 더 밝게 지내려고 했다.
나의 그늘을 이제 보이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마일리로 살았다.
언제나 웃었다.
그리고 누가 나한테 “쌍년”, “씨발년”이라고 욕해도
그 단어가 아예 안 들리는 듯이 생활했다.
그래도 맞고 다니기는 했다.
근데… 6학년 담임선생님 또한 자격이 미달된 사람이었다.
나의 힘겨움을 한 번도 눈길 주지 않았다.
5학년 선생님, 6학년 선생님… 잘 지내시나요?
잘 못 지내셨으면 좋겠네요.
많은 아이들이 저처럼 또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이 듭니다.
다른 아이들 모두 성년이 되어 아프지 않고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을 만났음에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