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움 그러나 산만함

피가 들러붙은 돛단배

by 후드 입은 코끼리

태풍도 없는 밤이었다.
세상은 고요했고, 바람 한 점 없었다.
밤귀가 밝으면 초음영역까지 들린다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지금 나는 들린다.
물의 속삭임, 별의 숨소리,
그리고 나 자신이 무너지는 소리까지.

나는 어둠 속을 걷는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붉은 점들이
안막 친 길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 길은 마치 불타는 심장처럼 희미하게 떨리고,
그 위로 내 그림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목이 타올랐다.
가슴은 뜨거웠지만, 두 손은 너무 깨끗했다.
손끝이 아무 냄새도, 아무 감촉도 담지 못한 채
그저 허공을 더듬었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은 금발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 끝은 습기를 머금어 돼지꼬리처럼 말려 있었고,
물가의 은빛 조명이 그 곱슬을 희미하게 감쌌다.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별똥별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별들이 제각기 옷을 차려입고 앉아 있었다.
푸른 불빛과 노란 불빛을 섞어 치장한 채,
서로의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자랑하듯 반짝였다.
별들의 무도회였다.

그때, 여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만 좀 떠들어. 다들 예쁜 거 알아. 그러니까 그만해.”
그녀의 목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바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돛단배 위, 고요함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노를 잡으려던 순간, 뱃머리가 천천히 기울었다.
무게중심이 맞지 않았다.
여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곳에 — 죽은 시체 한 구가 있었다.

시체는 눈을 뜬 채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삼켰다.
뒷걸음질치며 발을 떼었을 때,
청바지 밑단이 피에 달라붙어 있었다.
굳은 피였다.
차갑고 무거운 고요가 바다 위에 내려앉았다.

상어 한 마리 없는 바다,
죽은 시체와 금발의 여자,
그리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별들의 밤.
별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잔인할 만큼 아름다웠다.

누가 죽였는가?
그 금발의 여자인가?
아니다.
그녀는 몰랐다.
그녀는 피해자였다.

피냄새가 코끝을 찔렀지만,
그녀는 맡지 못했다.
감기로 막힌 코, 무감각한 감각,
그리고 홀로 있다는 공포가
그녀를 점점 더 멀리 밀어냈다.
땅으로부터, 현실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그 피가 식어가는 온도도,
자신의 몸이 떨리는 리듬도.
그래서 그 시체는 마치 전리품처럼 보였다.
태풍도 없는 밤이었다.
밤귀가 밝으면 초음영역까지 들린다더니,
그건 사실이었다.
그녀는, 너무 많은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진실만은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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