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하루
나는 항상 저녁 5시가 조금 지난 시점에 불안이 몰려든다. 오늘 하루에 대해 회고를 했을 때, 과연 오늘은 충만하고 좋은 하루를 보냈는지 회귀하기 때문이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 1장에서 말한 내용을 따라 하다가 불안이 오히려 찾아들었다. “하루를 충만하고 풍만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라. 그걸 매일 하다 보면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문귀에 꽂혀버린 것이다. 그냥 박혀버렸다. 머릿속에. 그렇게 해서 나는 풍만한 삶을 살았는지를 해 질 녘부터 따져보면…… 매일 “아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오늘도 열심히 ○○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시간을 더 쪼개서 지냈더라면 ○○을 만났을 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돈을 아껴서 하루를 좀 더 절약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후회를 잔뜩 몸에 지닌다.
그렇다 보니까 숨이 가빠지는 동시에 피로감이 확 몰려온다. 마스카라를 하지 않은, 화장기 없는 얼굴을 마주하면 오늘 이 꼴로 돌아다녔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만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자신을 인정하려고 쳐다보았다. 내 머리스타일은 그나마 괜찮은 편인데…… 오늘 왜 예쁜 눈을 돋보이게 하는 마스카라를 안 해서 하루를 망가뜨리냐. 너는 2분도 투자 안 해서 결국에는 내 기분을 망치는구나, ○○아 하면서 거울을 외면한다.
친구를 그런 상태로 만나려고 하다 보면 얼굴이 땅으로 꺼지는 법. 나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두려움에 휩싸인다. 불안해서 손을 계속 만진다. 나는 왜 내 모습이 싫지? 내 모습을 인정하기 싫지? 나는 왜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태인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소지품을 꺼냈다가 다시 넣어본다. 오늘 외출을 하기 위한 물건들을 잘 챙겼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잊어서는 안 된다. 완벽하게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기록’과 반성을 위한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녹음기도 틀어본다. 우리의 대화가 카페에서도 울리고 양재천 길에서도 울릴 때, 나는 이 내용이 과연 유익했는지까지도, 내가 실수한 말이 있는지도 확인한다. 그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복잡하고 어지럽다. 시간이 9시가 되면 오늘 하루고 뭐고 그냥 잠이나 들고 싶어진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지우고 나서 오늘 했어야 하는 일들을 끝까지 붙잡아본다. 포모도로를 켜고 이제 다시 집중 모드로 돌입 중. 누가 나에게 한마디 걸기만 하면 초예민하게 받아들일 작정이다. 그리고 나는 끝내, 내가 원하는 영상 편집의 컷 편집을 끝내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잠깐…… 내가 씻었나? 하고 머리끝을 만져본다. 말라 있다. 내가 머리 말린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 투두리스트에 몰두한 나머지 루틴을 잊었다. 루틴을 잊어서 나에게 겨땀 냄새가 풍기고 번들거리는 유분 가득한 얼굴이 미끄러진다.
나는 과연 이렇게 풍만하게 사는 게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