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이 되었는데도 술을 제대로 마실 줄 모른다. 사실 마시고 싶지도 않다. 그 알딸딸한 느낌, 알싸하고 화한 맛이 너무 구역질이 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논알콜 음료를 마시며 재잘거리듯 수다를 떤다.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언제든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환영이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나는 내 무드 스윙의 강약을 맞추느라 늘 정신이 없고, 눈치가 빠른 데다 사람 성격이 제법 포악한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못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지점에 서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스스로 선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색하지만 사실 그렇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수다쟁이라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고, 또 하나는 생각보다 내가 꽤나 ‘로열’하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안의 무언가가 계속 간지럽고 아파오고 쑤셨다. 그걸 친구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건 사실 내 안에 깊게 자리한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요즘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버겁게 느낀다. 내가 과연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을까 고민하다가도, 인생 뭐 있냐는 마음으로 나가긴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나를 위축시킨다. 세상 사람들은 나 빼고 잘나고 잘 지내기 위해 고민하는 것 같은데, 나는 제자리에 앉아 불안과 우울, 조증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보면 고민은 점점 증폭되고 걱정이 나를 둘러싸 결국 폭발하게 된다. 나도 그러기 싫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나는 또 한 번 사악한 가면을 쓰고 만다.
나는 일부러 친구 말을 끊어버린다. 조바심이 커지고, 그에 비례해 죄책감도 커진다. 그러면 나는 내 자신을 책망하고, 조용히 지내도 되는 이유를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잃어버리는 순간이 생긴다. 나는 과식한 뒤에도 입에 음식을 계속 넣어 씹다가 결국 집에 가서 다 토했다. 그렇게 과유불급인 모습들이 몸으로 증상처럼 나타난다. 누구의 친구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수다를 떨어도 집중력이 떨어져 내 이야기에 집중하기도 어려워지고, 결국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러다 조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카페인 때문인지 말속도는 빨라지고, 머릿속은 핑핑 돌아 친구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요즘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야기와 뉴스들을 보여주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버렸다. 오랜만에 근황이나 잘 나눌걸.
조증은 이렇게 무섭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불안이가 여전히 나를 간지럽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