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30분이 되자마자 목이 빳빳하게 느껴진다.
내가 회사에서 속을 썩이도록 일을 햇나보다.
속이 썩은 느낌보다는 내 근육들이 긴장해서 머릿속 혈관이 꼬여서 시야가 흐린 기분이 든다.
되도록이면 고물가시대에 친구랑 놀러나가기 보다는 집을 택해서 반신욕과 유튜브를 챙겨보려고 한다.
울리는 벨소리의 음량을 줄인다. 차에 올라탄다. 목소리가 나오는지 확인해본다. "음 음 아 아 "
입에 단내가 올라온다. 과연 미팅할 때 민폐가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사로잡힌다.
공부의 응어리로 10년 이상 과로로 힘들어했던 시절이 어느새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러냐.
깔끔하게 다린 정장과 흰색 셔츠가 노랗게 물들어갈 정도로 오래되었다. 새로 살 법도 한데 세상이 나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냥 깔끔한 선만 유지할 뿐, 나의 디테일은 무너져있었다. 머리칼은 단정한 모양새로 다듬었으나 시간이 지나니 푸석해지고 폭삭 내려 앉아 볼륨없이 꺼져버렸다. 손톱이 가관이다. 집에서 발라서 주름이 하나하나 끼었다. 그런 사람이 무슨 섬세한 마케팅일을 하겠다는지 전혀 신뢰감이 보이지 않는다.
돼지 국밥을 고춧가루에 풀어서 먹다보면 내 본분을 잊게 된다. 나의 달겨드는 전투 속에 고기들을 하나하나 얹어서 뜨끈한 국물들 위로 춤추게 만든다.
하마터면 선배 있는 자리에서 돼지를 씹으며 이를 보일 뻔했다. 나의 추악한 응어리들을 다 입에서 보일 뻔했다. 다행히 선배의 날카로운 유머를 대응하지 않고 밥에 집중했다. 그러니 나는 또 이렇게 왕따가 될 수 밖에...
그런 나에게도 완벽한 루틴이 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운동을 향한다. 운동은 매일 가지각색이지만 대체로 달리기를 선택한다. 숨이 턱턱 막힐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햄스트링이 곧 파열될 거 만 같지만 사실상 파열 되려면 더 많은 고통이 수반되어야한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한 이후에는 꼭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준다. 몸이 이완하는 것이 결국 고통일지어다 생각을 같이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 나는 다시 집으로 향해 누군가의 딸로 살아간다. 내 자신을 짓누르고 살며시 웃음기를 얼굴에 띄게 한다. 나는 집에 있는 강아지를 번쩍 들고 싶어도 그럴만한 힘이 없다. 강아지가 주는 무게가 곧 삶의 무게와 비례된다. 햄스터와 잡다한 곤충들까지 집에 떠들석하게 살고 있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행복을 소소하게 내비쳐주는 햇살같다.
목구멍의 응어리는 출근해서도 퇴근해서도 나타난다. 나의 고통의 아름다움을 조각해낸다. 고뇌 속에서 탄생한 하나의 기안서들은 파쇄기에 들어가서 갈린다. 아 파편의 바다들이 파도같이 밀려든다. 이솝의 <카르스트> 향이 입안을 맴도는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아마 회사에서 상사한테 갈리는 소리를 들을 때 인 것만 같다.
킬리안 향수보다 조말론 향수가 좋을 때, 인생이 가볍게 느껴지기 위해서 중력이 나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에 나는 킬리안을 몸에 간직하고 회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