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세상에는 너무 많은 두려움으로 가득차있다.
우리는 공포를 좋아한다. 여름에 한겨울의 시원함을 원하듯이, 공포를 원한다. 공포에서 오는 쌀쌀함이 여름의 더위를 이겨주는 듯하다면서 사람들은 공포물을 찾고 스릴러물을 읽는다. 스릴러에서 누군가가 사라지거나 죽임을 당하면서 시작되는 그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그렇게 시작되는 탈출극과 감정선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무척이나 인간에게 롤러코스터 같은 행복감을 주는 것 같다. 안전하게 눈으로 감상하면 안전한 동시에 그 떨림과 공포를 우리가 대신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안전"에서 오는 긴장감 속에서 우리는 날카로운 톱을 들고 썰리는 피해자들을 보고 막연하게 웃는다. 하지만 그 "안전"이 있기에 오는 긴장감을 믿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런 장르를 탐닉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한 장르에 무뎌지고 나서, 뉴스에 나타나는 묻지마 살인이 우리 곁에 다가왔을 때, 반응은 꽤 다르게 느껴져야 한다고 본다. 스릴러에서 봤던 기교와 비슷하고 그 잔인성은 사람이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수준인데도 말이다. 그 상황에서 던져지는 바닷가의 이끼들로 덮인 시체 잔해들을 우리는 잔혹해서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런데 공포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 살인마의 비하인드와 그들의 포토라인에서 하는 발언들에 집중한다. 그들의 심리를 이제 꿰찰 수 있다는 식으로 바라본다. 그것이 맞는 사회적 현상인가?
영화 <오멘>처럼 목 매단 교사, 불타오르는 666의 저주 숫자,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에 나오는 마녀들과 사악함은 오래된 전통인 것처럼 우리의 시선을 끌었지만, 이제는 그 자극을 쫓다가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이젠 무뎌진 나머지 공포를 감각적으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까 하는 걱정이다. 그래서 연구해 봤더니, 나와 비슷한 생각에서 이루어진 연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감정의 둔감화"이다.
감정의 둔감화란, 폭력과 잔인함에 계속해서 노출되면 그 자극에 둔감해져서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스릴러와 공포물을 보면 폭력성이 강화되고, 칼과 같은 둔기가 둔기로 느껴지지 않으며 마치 계속 가지고 다니는 물건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막연한 사고가 든다. 나는 이러한 사상에 깃들어 있는 집안에서 살았다. 그래서 어릴 때 어머니께서 드라마 <심슨>도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셨다. 거기서 나오는 폭력성과 정치적인 내용, 그리고 무엇보다 잔인함이 이유였고 그 드라마의 제목 조차 언급하지도 않으셨다.
나는 이런 둔감화 시대가 오면서 사라지는 아이들과 아낙네들이 많아지는 것 같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문학에서도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다머>, 영화 <나는 악마를 사랑한다> 등의 실제 살인마들을 기반으로 쓴 문학작품일 경우, 경고문을 강력히 붙여 놓고 그 살인마에 대한 분노를 함께 조장했으면 좋겠다. (최근 아리아나 그란데의 문제적 다머 발언에 발끈했다.) 나는 살인마의 미화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조심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넷플릭스는 그런 작업을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살인을 저지르고 잔인함을 표현하는 것일까? 그런 사람에게서 오는 폭력성과 공포에 대해 나는 경계하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다가오고 있는 현실에도 무감각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구 저편에서는 가자지구의 폭발에도 놀라지 않으니 말이다. 존 레논의 평화가 우리 곁에 오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이 이루어져야 하는 법일까? 공포가 우리에게 그저 유희적인 표현으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