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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21. 2024

글쟁이는 옷도 잘 입어야한다.

수필:내가 소원하는 목표

글을 쓰다 보면 내면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집이나 작업실에만 갇히게 된다. 세상을 직접 경험하기보다 오로지 글로만 배우다 보니, 정치적인 색채가 짙어지고 사고의 유연성도 점점 줄어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해야 한다. 산책은 글쟁이에게 꼭 필요한 명상 시간이다. 이 시간이 없으면 좋은 글을 쓸 힘이 부족해진다. 우유 없이 큰 송아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산책을 하다 보면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을 보고 자신의 옷차림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은 무채색의 옷을 입고, 구겨진 알록달록한 컨버스를 신었을 때, 어딘가 부적절한 차림새로 나선 것처럼 느껴진다. 머릿기름이 흘러 고뇌의 흔적이 드러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저 더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글쟁이는 외출할 때도 옷을 잘 입어야 한다. 자신이 글쟁이임을 감추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글쟁이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너덜거리는 안경테를 보며 백수로 지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그렇게 품위를 잃은 것이다.


글쟁이가 글쟁이임을 드러내지 않고 나간다면, 오히려 향기로운 냄새와 화려한 옷들로 자신을 꾸며야 한다. 옷이 꼭 명품일 필요는 없다. 계절에 맞는 옷을 입으면 된다. 가을이라면 맨투맨 안에 셔츠 하나만 입어도 멋스러울 수 있다. 여름이라면, 이제 살을 빼서 뱃살도 보이지 않는 몸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 나는 바디 이미지를 탈출하지 못한 여성 중 한 명이다.) 여름의 좁디좁은 원피스를 입고 나가 아이스 청귤 에이드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매일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이제는 가려볼 때도 되었다.


글쟁이는 사계절을 모두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사계절마다 머릿결도 부스스하지 않게 정리하고, 일반인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된 작업이 끝난 뒤에도 완벽함을 잃지 않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의 글도 마치 화려하면서도 깊이 있는 수트를 입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

글쟁이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멋쟁이가 될 필요가 있다. 장롱 속 옷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잃었던 진주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늘 입던 옷만 애용하지 말고, 그 진주를 찾아 스타일링해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하루를 멋지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머릿결 정리를 마쳤다면 손도 가지런히 모아 책상 앞에 앉는다. 앉아서 오늘의 명상과 함께 신문을 읽고, 그 뒤로 오늘의 할 일을 시작한다.자신의 완벽함을 거울 앞에서 쳐다보면 이젠 양말 마저 하나의 디테일까지 보이게 된다. 양말의 길이까지 보게 된다면 정말 글쟁이가 다 된거나 마찬가지였다. 글의 완성도가 옷에서 내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글들의 서사가 아마 옷에 있는 디테일하나의 커피처럼 달겨든다.


글은 점점 아름다워지고, 창작의 고통은 점차 덜어지며, 사람의 머릿속은 더 많은 생각들로 채워진다. 그럴수록 끌어올릴 수 있는 영감의 텐션을 높여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책을 찾게 되고, 영화를 보게 된다. 이런 곳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앞에 서서 하나하나 정독하고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샤워를 시작한다. 가장 깨끗한 향이 나는 제품으로 몸을 씻고, 풍성한 거품이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드라이기로 머리결을 따라 머리를 말려주기만 하면 오늘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렇게 밤에 잠들려고 노력하지만, 젠장. 수면제가 떨어졌다. 아무리 하루를 완벽하게 보내도 잠들지 못하면, 완벽한 옷장 속 하루도 끝이 나지 않는다.


결국 밤을 새고 나는 어제처럼 진주목걸이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 옷을 하나씩 입는다. 오늘의 옷은 심플하면서도 붉은색 포인트를 주었다. 내 물건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오늘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름이 있는 물건들 사이에서 글을 쓰다 보면, 마치 친구들과 함께 글을 쓰는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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