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루가 가파르게 움직인다.
지금은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새들이 지저귀다가 그치면, 그때부터 일이 시작된다.
' 세상에는 너무 많은 약속과 선약, 술과 담배가 있다.
그것들을 모두 뚫고 지나가 전철길에 오르면, 전철에서 들리는 희미한 음성들.
음성이 속삭이다가 웅장하게 퍼지며 "이제 내릴 곳이지 않나?" 노파가 나를 툭 건드린다.
이내 곧 자리를 비켜드리고, 한강을 지나 북쪽으로 향한다.
북에는 내 자리가 있다.
내 자리를 찾으러 떠나본다.
끝없이 북으로 도착해 발걸음을 옮기면,
보지 못했던 세상인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한국말을 사용하는 걸 보니 같은 나라 같기도 하다.
그렇게 도착해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똑같다.
마스카라와 빨간 립스틱,
남자들은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얼음장 같은 손.
거기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또 떠나는 여정.
전철의 칸은 한산하지만,
꿰꿰한 냄새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돌아온 곳에서 쏠리듯 달리는 전철 안에 어린아이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 기대고 잠이 든다.
기대다 보면 졸음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놓칠까 봐 정류장을 가만히 보기 힘들다.
세상이 쏠린다.
좌우로 흔들리고 기울어진다.
하루가 어쩌면 이렇게도 기울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