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된 소, 내장없이 깔끔한 잔인함

수필: 렘브란트의 <도살된 소>를 보고

by 후드 입은 코끼리

나는 이 잔인한 그림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것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흉측하게 그린 그림 중 하나다. 흉측함과 기괴함 뒤에 서 있는 아낙네와 깔끔하게 도축된 생육의 절개. 왜 이 그림이 현대에서도 밈이 되어 괴기스럽게 등장하는 걸까? 설마 이 그림의 붉으스름한 색채에 우리가 모르는 의미들이 담겨 있어서일까?


나는 피렌체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의 그림은 빛의 세련미가 독창적이면서도 아름다웠고, 그 어둠은 결코 단순히 검게만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들로 가득 차 어딘가 모르게 그 검은색 안에서 사람이 기웃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그림도 마찬가지로 검은 뒷 배경 속에서 귀신 혹은 사람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혹시 도살자가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서민적인 삶을 그려낸 그의 작품, 도살된 소는 그의 사회적 배경과 가장 힘들고 암울했던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사치스러운 삶 끝에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영원할 것 같던 그의 부는 눈앞에서 사라졌고, 그는 어두워졌으며 그 내면을 가장 깊게 끌어내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평가된다. 나 역시 이 그림을 보면 그 어두움 속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되는데, 그러다 숭고한 아름다움마저 느낀다. 소가 깔끔하게 도축되었기 때문일까. 만약 인간의 시체가 하얗고 깔끔하게 차려져 있다면 숭고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나는 렘브란트의 도살된 소가 이중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헐값에 구매된 이 그림은 현재 많은 사람에게 회자될 뿐,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아 크게 사랑받는 작품은 아니다. 이 그림을 보고 집에 걸어놓고 싶어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 삭막하고 피 없는 죽음을 누가 현관에 걸어놓겠는가? 이 그림은 기괴하고도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그림의 상징성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탐구할 뿐,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볼수록 매력 있다고 해야 할까? ‘볼매’가 있는 그림임은 확실하다. 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배가 갈라져 있기만 한데, 거기서 느껴지는 뼈처럼 하얀 순수함도 이상하게 다가온다. 이 그림을 10여 분 더 바라보면 점차 익숙해지며 더는 잔인함을 느끼지 않게 된다.


잔인함에 둔감해진다는 말, 기억하는가? 서민의 삶도 잔인하고 고통스러울 텐데, 그것마저 이제는 모두 둔감해진 것 같다. 이 작품은 그 시대상을 잘 표현한 그림 중 하나라고 해야 할까? 도살되고 잔인하게 죽임 당하는 서민들의 모습, 그리고 살아가는 힘겨움이 내면적으로 함께 표현된 것 같다. 빈부 격차가 심각해진 네덜란드의 황금기가 지나, 더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일상이라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공포. 그것과 더불어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소가 단순히 먹기 위해 죽임당한 것만 같지도 않다.


사실 나는 이 그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 보면서 꽤나 많은 페인트를 사용하고 저 색감과 질감을 표현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을 텐데, 왜 하필 도축된 소일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연구하고 시대적 배경과 렘브란트의 상황을 알아가면서 뭔가 퍼즐들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지금 우리도 마치 도축된 소처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데, 시민들도 그러한 일상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는 것만 같다. 누군가는 화려한 로코코 문화를 즐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도 작은 구원이 하나쯤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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