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을 걸어서 이야기, 하지만 가려진 은하수

수필: 밤길을 걷다보면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져서 좋다.

by 후드 입은 코끼리

은하수는 위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서울. 서울은 고구마 덩이줄기에 파묻힌 흙보다도 더 어둡고 거칠다. 그 거친 흙먼지 위를 올라다니는 하늘에는 가끔 헬리콥터가 지나가는데, 길을 잘 찾아가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그 거친 파도 같은 서울 속에서도, 사람들은 양재천을 따라 걷고 있다. 맑기를 바라는 양재천의 물속에는 왜가리, 까치, 청둥오리, 백로가 살아가고 있어, 삶이 아직은 풍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두 갈래로 나뉜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달리며 건강을 다지려는 사람들과 함께, 걸음을 맞추며 나누는 담소가 즐겁게 울려 퍼진다. 나 역시 이틀 동안 사랑니 때문에 달리지 못해 걷고 있었는데, 담소를 나누며 보내니 무척 재미있다. 엄마와 손을 잡고 팔짱을 끼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빗방울이 살짝 고였다가 떨어지곤 한다. 그런데 그 빗방울은 5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계속 서글픈 인생을 개탄하면서도 그 속에서 이상하게 재미있는 부분들을 발견했다. 우리의 추억과 앞으로 나아갈 미래들이 눈엣가시처럼 거슬렸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고, 그 덕에 잠이 솔솔 왔다.


나무들은 늠름하게 서서 가지마다 단풍이 질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엔 시들어 붉으스름하게 떨어지겠지. 나는 또다시 가을의 서글픔을 느끼며 걸었다. 그래도 가을이 또 오고, 겨울이 오면서 결국 내 나이는 30으로 향해가고 있구나 느꼈다. 나는 미래에 어떤 사람으로 변해 있을지 궁금해하며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엄마는 고된 집안일에 하루 종일 앉을 틈도 없이 걸었다. 다리는 푹푹 쑤시고, 관절 마디마디가 부서질 듯 아팠다. 하지만 오늘의 산책을 마치고자 우리는 다리를 건너 결국 1시간 넘게 걸었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몽상가처럼 길을 걸었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다가올 저녁밥을 걱정했고, 쌓인 설거지와 빨래가 쉬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한숨을 덜어주고자 조금씩 엄마의 집안일을 돕지만, 그게 진정 도움이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시계는 8시에서 9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짧은 시침이 왜 이리도 가혹하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흥얼거리는 아저씨들의 소리를 듣고 아빠인 줄 착각하기도 했고, 엘리베이터 층수를 보며 아빠가 돌아온 줄 알고 흠칫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아저씨들은 그들 나름의 모습을 닮았고, 결국 그들의 분출은 노랫가락 한 곡에 불과했다. 그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는 술에 취했을 때 가장 잘 불러지지만, 한밤중에 듣다 보면 나의 단잠을 깨우곤 한다.


그렇게 걸어온 양재천의 길은 어두웠다. 인위적으로 밝힌 가로등이 빛을 비추고 있었지만, 우리는 어두운 곳으로 나아갔고, 그곳에서 사람들의 여유를 보았다. 그들은 은하수 아래에서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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