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서 예의하면 우리 대한민국을 어찌 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단연 독보적인 이 둥지에 산 세월 어언 반백 년, 다른 언어가 따라 하기조차 쉽잖은 독특하고 다양한 '존댓말' 문화가 자랑스럽다. 자연스레 습득(習得)했으니 망정이지 공부(學習)로 깨우쳐야 했다면......
'먹었어요'를 '싸가지' 없이 어르신들께 쓸 순 없다, 그 누구도. 한데 문제는 이 '먹다'의 쓰임새가 여기저기 한두 군데로 제한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하도 희한해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때도 심심찮으니.
마른풀이 하필이면 어르신 머리에 붙어서는...... 어린(?) 손주들이 존대를 표한다며 '검불(마른풀)'에까지 '님'자를 붙여 "검불님"이라 했다잖은 가.
웃픈 현실과 만나며 '라테' 근성이 근질거렸다. 못 입고 못 먹던 세월 툭하면 전매특허처럼 끄집어낸다. 그땐 동네 어르신들 뵈면, "진지 잡수셨어요"가 안부인사였다고.
착 달라붙어 자동으로 발화되던, '먹다'의 높임말 "잡수다"가 울긋불긋한 낙엽 수북한 수목원길 아낙들 수다 속에 섞여 내 귀까지 들릴 줄은. 정겨웠다. 아픈 기억의 소환이었고.
"귀 잡쉈지, 그 어르신?"
무슨 뜻인지 몰라 갸웃거리는, 세대차 실감하는 모습도 겹쳐졌다. "듣는 게 좀 어려우시죠?"였다면 어렵잖게 이해했을 텐데, "귀 잡쉈지......" 라니.
예의를 갖춰야 하는 삶, 모국어로 깨우친 이들에게야 "귀 잡쉈어"가 아련함 불러일으키며 이해 가능했을 수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대 또한 적지 않을 테니 어쩌랴? 건너뛰기 쉽잖은 크나큰 폭이다.
몸에 밴 관성의 힘은 참 크다, 언감생심 '귀먹었어요'는 쓸 수 없고 '먹다'의 존대 '잡수다'로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이었으니. 의도찮게 듣게 된 '귀 잡쉈어'가 아른아른 만추(晩秋)에 접어든 내 삶의 계절을 새삼 깨웠다.
대문 사진 출처: 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