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우울을 건져 올렸다
나로서 살아 보기?
어느 봄날의 우울을 건져 올렸다. "새댁, 참 이쁘네"
나의 젊은 날 홈드레스로 봄날을 가꾸던 날도 나의 내면은 우울했다. 그 우울을 감추기 위해서 더 웃고 더 활발했었다.
나는 전업 주부로 살았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는 일이 가정의 화목이었고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남편 하는 일을 도왔고, 아이들 돌보는 일이 우선이었다.
"여자가 밖에서 일하면 아이들에게 소홀해져요!"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집안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을 더 강조했다.
남편을 위해서 삼시세끼 식사를 차려야 했고, 시댁도 종종 따라나섰다. 그게 가정을 위하는 일이었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삼시 세끼 중 한 끼는 남편의 일하는 곳으로 가져가곤 했었다.
나는 친정 동생들을 언니가 사는 곁으로 이사를 시켰다. 학교도 전학을 시켰고, 직장도 찾아다니게 했었다. 결혼까지 시켜야 할 의무감까지도 들었다. 늘 마음을 쓰면서 살았다, 다행히 잘 지내 주었다.
남편과 시댁에 눈총을 받으면서, 그러면서 더 잘하려고 노력했고 성실히 살았던 것 같다.
길들려 진다는 것,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 들렸다. 어쩌면 당연하다는 말속에는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도 내포 내어 있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고 있어. 가끔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는 것도 그럴 수 있는 것이고,,, 그건 아닌데, 그건 배신이고,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자아의 목소리는 내고 있지만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한번 소리 내었다간 시끄러워지잖아,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여자들은 그냥 참고 흘려보내며 사는 거야, 그때는,
나는 여자들이 결혼해서 시댁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다. 시댁의 일은 당연한 것이고, 친정의 일은 눈치를 보거나 나서 주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내부로 들려다 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혼란한 마음속에서 살았다. 남편과 대화하면서 풀어 본 적이 없다. 소통이 없으면 잘 모르는 일이다. 난 그런 감정들이 묻어져 있었던 것 같았다.
솔직한 얘기지만 나도 나로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동사무소에서 통장을 뽑는다고 했을 때 나는 자처했었다. 작은 움직임이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새마을 문고 활성화에도 주력했었다. 봉사활동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전에는 나로서 사는 게 아니라 맞추면서 살았던 것이었고, 이제는 나로서의 삶이 바뀌고 있었다.
두 딸이 성장하였다. 큰딸은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작은딸은 대학에 다녔다. 기쁨이 컸다. 나도 틈나면 공부를 했다. 공부에 재미가 붙었다. 그런 노력 끝에 학위를 두 개 받게 되었다. 나로서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수동적인 삶에서 능동적인 삶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어 갔다. 돈 버는 일도 해 보고 싶었다. 제 스스로 돈을 벌어 보고 싶어졌다.
부동산 시험을 치렀는데 동생은 붙고, 나는 떨어졌다. 어느 날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깨달았다.
남편은 내가 하는 일에 터치를 하곤 했다.
제때 식사를 안 차려 준다는 둥 밖에 일에 호응해 주지 않았다.
두 딸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녔다. 그러던 중 딸들이 짝을 데리고 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다행한 일이었다. 결혼해서 멀리 간 것도 아니었다. 인근에 살게 되었고, 나는 손주 돌봄 할머니가 되었다.
나로서 살아보기가 주춤해졌다.
나의 또래 어르신들은 손주 돌봄이 힘들다고 했다. 물론 힘들 수도 있지만, 손주 돌봄을 해 줌으로써 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더 하였기 때문에
손주 돌봄을 기쁨으로 받아 들렸다, 여기에서는 무한 에너지 사랑이 생겨났다. 남편 모셨던 삶보다는 쉬웠다.
손주들을 잘 돌보아야 나의 딸들의 가족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큰딸은 직장 다니면서 아기신발을 만들어 파는 일도 해냈다.
무슨 일이든 잘 해내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본업을 살려서 일하고 있다. 작은딸 가족도 직장에 성실히
다니고 있다.
나에게는 손주 셋이 있다. 어느덧 많이 성장하여
모두 학교에 다닌다. 손주 돌봄으로 산지도 10여 년이 훨씬 지났다.
지금까지도 손주 돌봄 할머니로 지내고 있지만,
몸은 힘들 수 있어도 정신적 자유는 무지 행복 하다. 딸들은 가끔 나를 여행지로 데려다준다.
나로서 살아보기
나로서 살아보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나로서 산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씩 준비된 삶이어야 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로서 살아보기에 도전하고 있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이만 하면, 나로서 살고 있는 중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결혼 전에는 친정을 위하는 삶이었다면,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는 전업주부로 살았다. 노후에는 손주들을 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수동적인 삶에서 변화된 나의 삶이 되고 있다.
나로서 살아보기는 매일 설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