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유럽, 빅토리아.

최남단 땅끝 마을

by 녹주고우


밴쿠버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은 우리 동내 마트에서 보는 일과 비슷했다. 자세히 들려다 보면 과일이나 채소의 색깔이나 모양, 어딘지 모르게 우리나라 거랑 달랐다. 기후와 토양 때문일까?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역의 맛이 다르듯이 이곳에서의 생산물을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물과 캔맥주, 음료를 골랐다. 에어비엠비에는 방이 두 개 주방과 거실 식탁, 화장실, 세탁기 등 넓고 깨끗했다. 하루 입었던 옷은 세탁기에 가볍게 돌린다.


인도를 걸으면서 여기는 밴쿠버 거리임에도 왠지 익숙한 땅의 온기가 느껴졌다. 가로수가 듬성듬성 서 있고, 사람들의 걷는 보폭은 가벼웠다. 낯선 사람과 일부러 마주치지는 않지만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띤 사람들의 정겨워 보였다.


23,12,31 일곱째


당일치기 2, 밴쿠버 아일랜드로 가는 날이다. 어제처럼 가이드님이 차를 가지고 오셨다, 이분도 캐나다에 제법 사셨고, 짬짬이 여행 가이드를 하신다고 하셨다. 캐나다는 이민 정책과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한국에서도 꽤 많이 오신다고 했다.


"이곳 캐나다는 사회주의식 복지제도, 공공 시스템 이 잘 되어 있어요." "사회주의라고요?" "일부 그렇긴 해요, 하지만 자본주의이고 공공의 분배가 잘 되어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정치적으로는 영국식 입헌군주제이고, 의료, 보험제도가 갖추어져 있다고 했다. 일찍부터 성별, 종교, 인종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미국과 다른 점이라고 했다.


밴쿠버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1시간쯤 온 것 같다. 아직도 아침햇살은 나의 그림자의 길이를 2배쯤 늘어 뜨리고 있었다. 모닝커피가 따스함이 몸으로 스며든다. 페리를 타기 위해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대부분 이곳으로의 여행은 차량과 동반 배에 오르기 때문에 차량 줄도 상당수 늘어져 있다. 4백 대까지 실을 수 있는 배라고 해서 사람의 숫자를 계산해 보면 천 명 이상은 탈 수 있는 배라고 생각이 들었다.


밴쿠버 아일랜드의 크기는 우리나라 3분의 1 수준이라고 해서 섬치고는 매우 큰 섬이다. 우리의 하루는 빅토리아 도시만 보고 오는 일이다. 그리고 이 섬의 비중은 빅토리아 도시에 쏠려 있다. 남쪽의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고, 미국과도 접해 있는 곳이었다.


바다가 잔잔했다. 배의 움직임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배 안에는 편이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배의 선상에는 바닷바람과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간간히 풍경 안으로 빙하의 흔적이 패인 골짜기 사이를 잠식하며 지나갔다. 언제쯤부터 퇴적되고 골이 생겨 났는지 모르지만, 진화를 거슬러 라가다 보면 뗏목이 강을 오르는 풍경까지 만나게 다. 풍경은 오랜 시간 퇴적 되고 지나왔다. 사람들도 비슷한 것 같지만, 재각기 다른 풍경 안에서 살아간다. 1시 30분 지나고서야 빅토리아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빅토리아


이곳은 인디언들이 살았던 땅이다. 19c 중반 영국이 첫발을 디뎠을 때는 군사적으로 점령하기

보다는 모피 무역의 거점지로 정착했고, 이후 식민지화 되었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식민지 확장 시대였다. 영국은 빅토리아여왕의 제임기간 64년

(1837~1901) 캐나다도 영국의 통치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여왕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빅토리아라고 부르고 있다.

남쪽으로 30분 이동, 브리티시 주의사당의 앞에 이르렀다. 푸른색 지붕의 주 의사당의 건물은 1897년 완공되었고,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바로크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었다. 주 의사당과 넓은 정원, 엠프레스 호텔, 이너하버 항구까지 이어진 이곳을 작은 유럽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이런 유럽풍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특히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처럼, 이곳의 정원은 넓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여왕께서도 방문하셨다고 한다. 그때를 지나왔고, 지금에 이르렀다. 주 의사당 안에도 관람할 수 있는데, 일요일이라서 아쉽게 들어가 보지 못했다.


정원의 코리아 기념비에서 한국전쟁과 관련되어 있는 문장에 눈길이 머물렀다. 1950~53 캐나다 참전 용사를 기리는 문구였다. 이 먼 곳에서 한국 전쟁에 참전해 주셨다니 놀랍고, 감사함이 우러났다.


아름다운 항구 이너하버 Inher Habeur 에는 보트와 수상가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풍경이 있는 바다. 아직 겨울인지라 항구의 새들은 먹잇감을 찾아 풍경과 어우러진다. 그 사이로 겨울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걷고 달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음악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축제의 현장에 서 있었다면 나의 걸음도 멈추어 서 있었을 것이다. 혹여 다른 시간을 놓치지는 않았을까? 그만큼 이곳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재산 가치가 높다는 수상가옥까지 한 바퀴 돌고 나왔다.

맛집 검색은 어디에서든 딸의 몫이다. Victoria Sushi 점을 찾았다. 이곳은 일본 음식점. 스시와 우동, 튀김, 야채 무침은 별미로 새콤달콤 입맛을 돋았다. 한호 큼씩 입 안에 넣는 즐거움은 또 다른 기억의 장소가 된다.

딸은 여행의 리더이다.


아일랜드 최남단 트랜스 캐나다 트레일

최남단 해안 산책로는 태평양을 향해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서 우리는 트랜스 캐나다 트레일 기념비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익숙한 바다냄새가 온몸으로 차고 올랐다.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걷는 사람들,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 강아지 눈높이의 식수대에 잠시 멈추어서 섰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강아지들의 사랑스러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손주들은 어느새 친해진 강아지들과 뛰어놀며 연을 날리는 곳에 있었다. 오래된 주택가의(로컬라이프) 진가는 비싼 집값에 있다 하니 땅끝 마을 사람들의 품격이 느껴지는 일상을 들려다 보았다.


최남단에서의 바다는 고요했다. 누군가는 저 바다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태평양 너머 처음 꿈꾸며 도전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수천 년 동안 꿈의 세계 안에서 살았다. 언젠가 꿈을 허물고 문명이 차고 올라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나 했을까? 바다와 뭍의 경계, 원주민들과 문명의 경계에서 변화의 속도는 빨랐다. 꿈이 허물어진 문명은 거칠게 파괴되었고, 건설되었다. 이 땅의 원주민들은 토템폴에 조상의 기록을 담고 있었다. 장승처럼 지키고 서 있었다.


2023년 마지막 밤을 이곳의 밴쿠버에서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는 이미 앞선 시간이라서 새해맞이 행사인 제야의 종소리를 이곳에서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마음이 경건해진다. 새해의 소망은 여느 때와 같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