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산업혁명의 시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 되
었다. 화가 터너의 '모호한 런던의 안개' 그림을 보면서 도시의 불빛마저 잠겨 버린 듯, 달리는 증기차에서 뿜어내는 증기 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문명의 중심에는 런던이 있었다.
시대적으로 대공황이 있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들. 남아도는 물건들, 브릿지에 모여든 사람들, 거리의 빈민은 여전히 헐벗고 굶주려 있었고,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았다.
<찰리의 어린 시절>
찰리는 영국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끊임없이 한 끼 먹을 것을 찾아나섰고, 부모님은 술집 무대 뒤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결국 부모님은 이혼했고,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으로 일찍 죽고, 어머니마저도 정신 병원에 드나들 정도로 궁핍했다. 찰리 역시 빈민 수용소를 드나들었다. 그나마 찰리가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영향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있었다.
찰리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위축되지 않았다.
<성장>
<랭커스 나막신 춤 단>에서 견습생 생활을 하였고, 서커스 연극단에서 공연을 하면서 스스로 힘이 자랐던 것 같다. 찰리는 점점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었다. 카노 극단에서 미국 순회공연을 하던 중 할리우드에서 초청받았다. 영화에도 직접 촬영하고 감독까지 맡았다. 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되어 있었다.
찰리는 헐렁한 바지, 꼭 끼는 코트, 그리고 커다란 신발과 콧수염은 찰리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여행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이 궁핍과 고통을 알았다. 실업과 가난, 불의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다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모더타임스>였다.
채플린은 공장일의 단조롭고 지루함에 대하여 비판했다. 노동자의 여건은 열악했고 기계화로 피폐해진 사회 문제를 희극적인 방법으로 코믹하게 풍자한 영화였다. 무조건 좋은 반응만 보인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를 비판한 영화라고 해서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모던타임스>
매일같이 공장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찰리는 하루 종일 톱니바퀴 속에서 나사못을 조이는 일을 하고 있다. 조여도 조여도 끝이 없다. 심지어는 기계에 빨려 들어가서도 계속 나사못을 쪼이고 있다.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만들어 내고 찍어내고 있었다. 공장 노동자가 물건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안될 지경이었다. 찰리는 기계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들이 라사로 보였다, 그는 정신병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또 다른 소녀도 어린 동생을 위하여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동생은 경찰에 의해 보호소로 보내졌고, 소녀는 도망쳐서 공장 노동자가 되었지만 어린 소녀였다.
찰리는 공산주의로 몰려 감옥에도 갔다가 나왔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소녀와 만나서 살아간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둘이서 카페에서 춤을 추는 일이었다. 매일매일 힘들고 고단했다.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고, 야유도 보냈다. 찰리는 하는 일에 자신감이 붙었다. 사람들은 인정해 주었고, 찰리는 자신의 해내는 일이 옳다고 깨달았다. 희망이 없어 보여도 작은 미래가 보였다. 찰리와 소녀는 마지막 뒷모습을 보이며 먼 길을 떠난다. 순간순간 뭉클함과 동시에 무척 유쾌했다.
<마무리>
채플린 영화를 무료 시리즈로 보았었다. 오래되어도 기억이 선명하다. 그 이후 채플린 영화를 본 적은 없다. 그 시절 보았던 채플린 영화가 행운이었다. 대사가 없는 흑백 영화였어도 몸짓과 표정만으로 광대처럼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모던타임스>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똑같은 일상 안에서 돌고 돌며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모습과 같다. 때론 광대처럼 분장하고 싶은 나는 행복한가?
먹고사는 문제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그때의 무성영화를 보면서 다 벗겨진 우울과 희망, 허망함과 그리움을 보았다.
<소년>1921, <황금광 시대>1925, <도시의 불빛>1931, <모던 타임스>1936, <위대한 독재자>1940, 등 논란이 된 영화도 있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공산주의자들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찰리는 여러 가지로 고초를 겪었다. 찰리는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스캔들로도 많았고, 결혼도 여러 번 하였다.
찰리가 어려운 시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네 번째 부인 오나가 있었다. 노후에 들어서면서 4번째 부인과 스위스에서 살았다.
<채플린의 말>
나는 한번 웃기기 위해서 백 번을 연습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100번을 이상 연습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있어서 영화는 곧 인생이다. 나는 온 세계인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되찾아 주려고 한다." -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 -
나는 무엇을 위하여 몇 번을 노력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