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의 빛의 향연

오귀스트 로뎅

by 녹주고우

파리에서의 아침 풍경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오래된 통로의 흔적처럼, 분위기는 어제 저녁을 다 털어 내지 못한 투박한 공기가 스쳤다. 이내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딸과 이곳에서의 지하철은 처음인지라 사람들의 표정에 눈이 쏠렸다. 손잡이, 의자 모양에도 눈길이 갔다. 꼬마 아이가 엄마랑 앉아 있는 모습은 여느 풍경과 비슷했다. 샹젤리제 거리로 나왔다. '이곳이 그 유명한 명품거리구나.'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가게 문이 열린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루이뷔통 본점 매장 등 간판이 눈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파리의 거리를 실감했다. 햇살이 길게 내리 쬐었다. 근처 코몽뜨극장 앞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가이드님과 여행객 2팀과 만나기로 약속된 장소였다. 오늘 일정은 오르세 미술관, 베르사유 궁전 두 곳이다.


파리는 서울의 6/1 면적, 여의도만큼이란다. 미술관, 박물관은 70여 개, 특히 루브르 박물관은 고대. 중세, 르네상스에 이르는 6천 년 역사를 담고 있다고 다. 오르세 미술관은 1800년 대 후반~1914년까지 (60년), 대부분 인상주의 미술만 담고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의 빛의 향연


오르세의 미술관은 1900년대 파리 박람회 때 지어진 기차역이었다가 1986년 인상주의 거장들의 명작으로 세계적인 전시 공간이 되었다. 기차역의 유리돔은 자연광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화사한 분위기라서 인상파 그림에도 최적의 공간이라고 했다.


오르세 투어는 3층의 단연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관이었다, 모네의 <루앙대의 성당>, 르노와르의 <무도회>, 드가의 <발레>,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림들이 다수였다. 빛의 속도, 소용돌이 안에 서 있는 듯했다. 2층은 고흐와 고갱의 전시실, 둘의 관계는 같은 듯 다르다. 작품도, 성격도 하지만 삶은 같은 방향에 있었다. 1층의 밀레의 <만종>에 머물던 시간을 떠올렸다. 교회 종소리와 농부의 기도가 들녘에 퍼져나가는 듯했다.

드가의 발레 연습

논란이 되었던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해석을 따라가 보면 흥미롭다. 당시 전시 작품에서 낙선된 그림이었고,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풀밭 위에 나체의 여인과 옷을 잘 갖추어 입은 신사 두 분, 그리고 한 여인이 밀끄러미 쳐다보는 장면은 지금 시점에서도 과감한 표현이다. 당시 비평가들은 정숙치 못한 여인으로 폄하하였다. 작품 속의 인물은 마네의 실제 주변 인물이라는 것도 하필 옷을 벗은 여인 옆에 그려 놓은 이유는 무엇인지, 두 신사는 마네의 아내의 오빠, 마네의 동생이란다, 두 신사분도 이런 논란 속에서 무엇이라고 답변하지 않았을까? 인상주의 흐름 안에 색감, 표정에 머물게 된다. 감정, 소용돌이, 몽환적 분위기, 찰나의 순간, 빛의 속도를 담아내려고 했던 화가들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은 1890년대 자신의 집 지베르니 정원에 연못을 조성하여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빛과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 자연의 순간을 탐구하며 2년에 걸쳐 그린 연작이었다. 모네의 말년의 모습의 아름답게 그려졌다.



로뎅의 <지옥의 문>

오귀스트 로뎅


미술관에서 로뎅의 <지옥의 문>을 만났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흔히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물음이 떠오르곤 다. 미술관 안쪽에 검은 그림자처럼 서있는 <지옥의 문>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치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지옥 불에 있게 되는 건지, 그 어두운 실체를 들려다 보면서 그 속의 인물들을 생각해 보았다


로뎅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장식미술관에 세울 조각 제안을 받았을 때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주제로 삼았다. <지옥의 문> 극대화하고자 수많은 군상들이 지옥의 문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고통을 표현하였다. 죄의 값으로 고통을 조각해 놓았다. 죄의 값을 구분하며 세세한 인간들의 얼굴을 드러 내었다. 형편없이 나약한 인간 군상들이 살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 같았다. 죄를 짓고도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 본연의 모습처럼 보였다. 고통을 이해하게 되고, 신의 심판을 받는 고통을 바라보게 된다. 지옥의 문 위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발아래로 몸부림치는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도 지옥의 문 앞에서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완성된 지옥의 문은 높이 635cm, 넓이 400cm, 두께 85cm의 청동주조물이다. 로뎅은 혼신을 기울여 이 작품에 매달렸지만 장식미술로 제안받았던 일은 취소되었고, 석고와 점토로 된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이후 청동으로 다시 제작된 것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의 《지옥의 문》


작품 속 인물들


<망령들>


이들은 누구인가!? 지옥의 문, 밖에서 세상의 비를 맞으며 지옥의 떠돌이로서 고통에 머무는 영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도망치려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어떻게든 살고자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우골리노와 그의 아들들>


13세기에 이탈리아의 피렌체장군과 우골리노 장군과의 싸움이 벌어졌다. 피렌체 장군이 이겼고, 우골리노 장군의 네 명의 아들들은 잡혀갔다. 아들들을 서서히 굶겨서 죽인다. 우골리노는 눈이 멀었다. 자식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던 우골리노는 죽은 자식을 먹어 치운다. 로뎅은 짐승의 네 발로 표현했다. 우골리노는 자식의 고통을 품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지옥의 문의 200명의 군상들은 욕망, 권력, 탐욕들로 죄를 지은 고통의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작품은 고통을 성찰하며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 같았다. 지극히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졌다.


오귀스트 로뎅(1840~1917)


오귀스트 로뎅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었다. 여행 중 화가나 조각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로뎅의 육체의 근육질 표현은 과장되어 보일 정도로 우람하다. <생각하는 사람>이나 또 다른 조각에서도 보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근육질 표현과 많이 닮아 있다.



로뎅은 조소가였다.

20세에 도자기 그림이 직업이었고

40세 이후 빛을 보게 된다.

국가에서 의뢰한 지옥의 문 미완성

로뎅의 표현 방식은

우람한 근육 과장표현

관념예술(생각 전달)이었다.


<지옥의 문> 12개만 진품으로 인정(로뎅협회)

한국의 삼성에도 7번째 진품이 있음

한 작품 완성하려면 50명의 화가 2년 반 걸림

메모장에서 -


오르세의 화가들

마네가 문을 열고

모네가 빛을 발견하고

르노아르가 삶의 기쁨을 그리고

드가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고흐가 감정을 폭발 시키고

고갱이 새로운 세계를 찿았습니다.

가져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