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여행 이야기
한밤중에 딸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숙소를 예약하고 그 주에 통영으로 떠났다. 이즈음 푸른 바다가 그리운 사람에게 동양의 나폴리 통영은 더할 나위 없이 여행하기 멋진 곳이다.
직장 생활할 때 가족에게 '우리도 여행 한 번 가자.' 친구들에겐 '밥 한번 먹자'라고 말은 했지만, 많은 것을 포기했다. 한 푼어치도 안 되는 이유를 핑계 삼아 다음으로 미루며 살았다. 미니멀라이프로 소유 대신 경험이 중요해진 삶을 살며 여행을 전보다 자주 가는 편이다. 눈과 귀를 열어 보고 듣고 느끼는 삶, 추억을 만드는 여행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도 어릴 적 다녀온 여행을 이야기하는 딸을 보며 더 많이 같이하지 못한 것 대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어릴 적 아버지가 카세트테이프로 듣던 트로트 음악이 꿍짝 꿍짝 울려 퍼진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휴게소에서 군것질하는 재미다. 스낵코너 음식 냄새가 가던 발길을 붙잡는다. 딸은 호두과자와 커피를 사 왔다. 나이는 신세대, 입맛은 할머니, 감성은 레트로다. 어려서부터 오이지무침, 동치미, 돼지고기 김치찌개 같은 할머니가 해준 음식을 좋아하더니 커서도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 늘 밥을 같이 먹는 식구는 얼굴도 성격도 입맛도 취향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
5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경남 통영시 미륵산에 자리한 미래사다. 평일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고양이 한 마리가 빤히 쳐다본다. 낯선 사람에게 보이는 긴장감과 호기심을 보이며 녀석이 조심스레 다가온다. 딸이 고양이 머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어 주니 고양이가 우리 주변을 맴돈다.
미래사는 법정 스님이 행자 생활을 시작한 절로 미륵부처가 오실 절이라는 의미가 있다. 미륵부처는 현재는 보살이지만 다음 세상에 부처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등 색색의 연등이 달려 있어 사찰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고 사뿐사뿐 사찰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스님의 염불 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
보통 사찰 주변에는 전나무나 소나무가 있는데 미래사에는 키 큰 편백이 많다. 이곳에 편백 숲길이 있는데 70여 년 전 일본인이 심은 것을 해방 뒤 사찰에서 매입해 산책로를 꾸몄다고 한다.
하늘 위로 뻗은 편백 숲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황톳길이라 걷기에 편안해 좋다. 울창한 숲으로 들어오는 봄 햇살과 편백 향이 머리를 맑고 시원하게 한다. 크게 숨을 들이마셔 아랫배까지 가득 채웠다가 천천히 내보내며 걸었다. 자연의 건강함이 내 몸 가득 채워지고 몸은 깃털처럼 가볍고 번뇌는 사라진다.
길을 걷다 보니 입구에서 만난 고양이가 우리 앞으로 홱 지나간다. 도도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고양이 등에서 윤기와 탄력이 느껴진다. 딸과 친구처럼 팔짱을 끼고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오솔길 끝에 닿았다. 이곳 미륵불상 옆에 고양이 두 마리가 오후 햇살을 받으며 사이좋게 놀고 있다. 한 녀석은 입구에서부터 쫓아다니다 앞서간 녀석이다.
편백숲 오솔길 끝 전망대에서 푸른 바다가 보인다. 숲의 끝에서 코발트블루의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을 만났다. 내 삶터에서 한발 물러나 만난 낯선 풍경에 행복감이 밀려든다. 한낮의 태양을 받은 바다는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보석처럼 빛이 난다. 바다 위 하늘은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청청하다. 딸은 스마트폰으로 하늘을 찍어 보여준다. 뭉게구름이 솜사탕처럼 두둥실 떠 있는 사진 속 푸른 하늘을 세월이 지나 또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누군가에게 바다는 거대한 삶의 현장이지만 여행자가 바라본 바다는 한없이 아름다운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