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희 Jun 29. 2024

김창열의 ‘물방울’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상상해 본다

김창열 화가에게 물방울은 어떤 의미였을까? 


김창열 화가의 물방울을 처음 봤을 때 금방이라도 캠퍼스에서 도르르 떨어질 것처럼 사실적으로 보였다. 가볍고 경쾌하고 영롱해 진짜 물방울이 캠퍼스 위에 맺혀 있다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감탄과 함께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다. 어느 날 미술관에서 화가의 작품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생겨 다가가 한참을 보았다. 물방울에 그림자와 빛을 받은 부분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투명한 물방울을 보느라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그림자가 있어서 투명한 물방울이 형체를 드러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방울 그림의 실체는 빛과 어둠을 같이 그려서 만들어진 거였다. 김창열은 50년이 넘게 수도 없이 많이 빛과 그림자를 그려 투명한 물방울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화가다. 

      

김창열 화가는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외삼촌에겐 데생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6살에 월남했고 1948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이 벌어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김창열 화가는 한 매체 인터뷰에서 6.25 전쟁의 상처는 젊은 나이에 맹수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괴로웠다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깊고 고통스러웠다. 1965년 은사였던 김환기 화백의 도움으로 미국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 재단 장학금으로 판화를 전공했다. 1969년에는 백남준의 도움으로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이를 계기로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 캔버스 살 돈이 없어서 그림을 그렸던 캔버스에 물을 뿌려 유화물감을 떼어내 다시 사용할 정도로 그의 삶은 궁핍했었다. 어느 날 아침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보았고 그는 숙명처럼 물방울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날 아침 그는 진주알 같은 물방울에서 어떤 위로를 받았을까? 물방울을 손으로 만지며 흩어져 버린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방울과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마음이 같다고 느끼지는 않았나 싶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되고 싶었나?    


나는 김창열 화가의 물방울이 구름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물방울이 기화해 한 점 구름이 되어 고향의 하늘을 가고 싶었지 않았나 상상해 봤다. 70년대부터 시작된 물방울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영롱해지고, 물방울의 움직임도 다양해졌다. 80년대부터는 마대에 물방울을 그렸고 90년대 들어서는 천자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배치하였다. 그의 물방울들은 캔버스 외에도 신문지, 모래, 나무판, 한지 등 여러 재료에서 발현되었다.      


떨어지는 물방울, 완성되지 않은 물방울, 흑백의 물방울, 말랑한 물방울, 둘러싸인 물방울, 구름 같은 물방울, 무리 지은 물방울, 눈에 띄지 않는 물방울, 떨리는 물방울, 돋보기 물방울, 추상적인 물방울, 극사실주의 물방울, 표현주의 물방울, 초현실적인 물방울, 로맨틱 물방울, 자연주의 물방울, 작가는 다양한 변주로 자신만의 물방울 만들었다.


물방울은 작가 본인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동안 숙성된 고통의 절정을 상징하고 있어 보인다. 그날 그가 새벽 아침 빛나는 물방울을 보면서 그는 물방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방울은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없어져 버리는 굉장히 찰나적 존재다. 평소 좋아한 달마대사가 한 말, 모든 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하며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물방울 하나하나를 그렸지 않았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항아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