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르 제리코의 1821년 '앱섬의 경마'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것처럼 검은 구름이 가득 끼어있다. 바람도 거셌다.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남자는 친구들이랑 들판으로 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애마의 등에 올라 드넓은 초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거친 바람을 가르며 4마리의 말은 공중을 날아오르듯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툭 툭 툭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달리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가 옷을 타고 온몸으로 젖어들고 있었고 남자는 더 가혹한 채찍질을 가하고 성난 말들은 바람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진흙탕 같은 현실에 벗어나고 싶어서였을까? 그 시간만큼은 오직 달리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이 그림을 보면서 말 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는데 문득 모든 걸 소진해 버렸다는 것을 느낀 날, 남자는 달려야만 했다. 무리 속에서 힘껏 달려야 했다. 왜냐고 묻는다면 인간에게는 질주 본능이 있기 때문이라는 애매한 답으로 얼버무리면서 말이다.
이 그림은 테오도르 제리코(1793.8.31~ 1824.8.31)의 <1821년 앱섬의 경마>라는 그림이다. 그가 죽기 3년 전에 그려졌고 그는 불행히도 낙마 사고로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화가다. 제리코라는 이름은 몰라도 ‘메두사호의 뗏목’이란 작품만큼은 대중에게 알려진 그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인간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 왔던 동물은 말이다. 인간이 예술을 시작했을 때부터 말은 등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 '라스코 동굴 벽화'에 '들소', '사슴', '염소'와 함께 '야생마'가 그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 캔타우루스의 전설에서도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말의 모습으로 이야기 속에 있다. 사람들은 말의 속도와 인간의 지능을 합쳐서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을 타기 시작한 거는 기원전 3천 년 정도라고 한다. 말을 타는 데 필요한 고삐나 재갈, 등자 등이 그때부터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말은 곧 전투력이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말을 타고 달리는 건 부와 권력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페라리나 포르셰 자동차에는 앞다리를 들고 있는 말의 역동적인 그림이 로고로 사용되어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육상 동물로 치타를 이야기하지만, 지구력이 필요한 장거리에서 가장 빠른 건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을 이동 수단으로 길들여 왔다. 가장 빠른 말은 이동 수단으로는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해왔다.
나는 말 그림 중 18세기에 조지 스텝스가 그린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휘슬 재킷'이란 그림을 좋아한다. 영국 사람들이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이다. 말을 그리는 화가 중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화가가 없었다. 휘슬 재킷은 전설의 명마로 그림에서 말에서 윤기가 흐르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온 작품이다.
이 그림은 오직 말이 주인공이다. 스텝스 (Stubs)는 말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18개월 동안 농가에 기거하면서 말에 관해 공부했다. 가죽이 벗겨진 말 시체를 매일 받아서 근육과 힘의 형태와 움직임을 공부하면서 생동감 있게 그림을 그린 작가다.
나는 제주도에 여행 갔을 때 겨우 1시간 정도 말을 타본 게 전부였다. 그래도 말 등에 올라서 초원을 달리는 기분은 최상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 노래방에 가면 나의 애창곡은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이다. 물론 나의 호흡으로는 이 노래를 소화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불렀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르면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 미친 듯이 함께 소리 지르며 노래를 해주기에 노래를 못해도 상관이 없다. 목이 쉴 정도로 내질러 버리면 묘한 쾌감이 든다.
"닥쳐
노래하면 잊혀지나 사랑하면 사랑받나
돈 많으면 성공하나 차 있으면 빨리 가지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는 달려야 해 거짓에 싸워야 해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여러 사람과 함께 '닥쳐'를 외치면서 마음속 응어리들을 모두 쏟아내고 탈진해 집에 돌아왔다. 어디론가 달리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게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노래 한 곡으로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 아등바등하던 일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 것이 되어 버리는 쾌감 같은 걸 느꼈는데 제리코의 '앱섬의 경마'도 그가 그런 날 그리지 않았을지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