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순간의 통쾌함도 잠시, 대낮에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밀려왔다. 퇴직 후의 자유는 생각보다 벅차고 막막했다. 30년 넘게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맞춰 살아오던 내가 갑작스레 주어진 24시간이 낯설고 두려웠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냐? 고 물어볼까?‘ 겁이 나 밖으로 나가는 것도 주저했다. 그렇게 한 달을 집에만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을 먹고 습관처럼 TV를 켜고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영화 ‘쇼생크 탈출’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 앤디가 아내와 그 불륜 상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영화를 예전에 봤을 때도 꽤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리모컨을 눌렀다. 50년 넘게 감옥에서 지낸 브룩스는 가석방이 결정이 되자 동료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난동을 부리는 장면은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감옥에 남겠다는 이유였다. 그의 의지와는 반대로 잔뜩 움츠린 채 버스 앞 좌석에 앉아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주름진 얼굴과 꽉 다문 입술, 텅 빈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석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한다. "친구들, 바깥세상은 모든 게 너무 빨리 돌아가. 어렸을 때 자동차를 딱 한 번 봤는데, 지금은 사방이 자동차 천지야. 세상이 너무 바빠진 것 같다. 난 여기가 싫어. 항상 두려움 속에서 사는 데 지쳤어. 그래서 여기 있지 않기로 했어." 자살하면서 교도소 동료들에게 남긴 편지 내용이다.
브룩스의 두려움은 곧 나의 두려움이기도 했다. 브룩스의 자살은 내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경계에서 서성이고 있는가?" 익숙했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틀 안에 머물러야만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나는 길들여진 삶에서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조심스럽게 집을 나왔다. 찬 바람에 눈발이 정신없이 날리는 날씨였다. 온 세상이 꽝꽝 얼어붙은 날, 갈 곳 없이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 마주친 도서관 앞에서 서성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도서관은 고요하고 따뜻했다. 평일 도서관에는 학생들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았다. 큰 창으로 햇살이 들어와 도서관은 온기가 가득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고 뒤 창문 쪽 책상에 앉았다. 그날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 그 후로도 줄곧 그 자리에만 앉았다. 서가 뒤쪽이라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이 좋았다. 답답했던 마음에 숨통을 틔워줬던 그 모퉁이 자리가 한동안 내가 숨어 지낸 곳이었다.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 어긋나 힘든 일이 참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며 잘 살아냈다. 수많은 저자들의 책이 빼곡하게 들어선 열람실에서는 오래된 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마치 포도주가 숙성되며 풍기는 향기처럼, 나는 그 안에서 천천히 치유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상처받아 부서진 빈 껍데기 같은 마음속 이야기들을 써 내려갔다. 처음에는 생각을 글로 적었는데 어느 순간 글이 내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으로, 분노가 고요함으로, 마음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날 괴롭혔던 불면증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을 읽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주인공은 마치 나처럼,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그 상실 이후 더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속도와 요구에 맞춰 살아가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나만의 시간을 찾고 싶었던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그가 미술관에서 그림들 사이로 숨어들었듯, 나는 도서관에서 책 속으로 들어갔다.
고대 그리스인 신화에 나오는 '카오스'라는 개념은 혼돈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텅 빈 공간을 뜻한다고 한다. 텅 빈 공간에서 새로운 세상과 질서가 만들어졌다. 그것이 바로 코스모스였다. 카오스는 혼란이 아닌, 가능성의 공간이다. 마음이 혼란하다면, 그건 새로운 시작을 위한 혼돈일 뿐이다. 헬렌 켈러는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닫힌 문을 너무 오래 바라보느라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브룩스는 열린 문을 보지 못하고 닫힌 문만 바라보다 죽음을 선택했다. 나는 힘들고 추웠던 지난겨울을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글을 쓰며 조심스럽게 다른 문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