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뒤틀린 영혼의 화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by 이소희

창밖에 또다시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시를 순식간에 하얗게 덮어버릴 기세였다. 오늘은 집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할 수만은 없는 날이다.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전시를 보러 가기로 한 날, 하필이면 폭설이라니. 날씨가 내 편이 아니었지만,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길을 나섰다.


전시 제목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박물관 앞. 길이 조금 막혔지만 서둘러 나선 덕분에 약속된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미술관과 협력해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등 익숙한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무려 191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주중임에도 박물관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19세기말, 비엔나는 정치적·문화적으로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보수적인 합스부르크 제국은 내부 갈등으로 흔들렸고, 예술가들은 전통을 넘어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며 심리학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고,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음악가들은 기존의 형식을 탈피한 음악을 작곡했다. 이러한 변화는 미술에도 영향을 미쳐 예술가들은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표현을 시도하게 되었다.


특히 비엔나의 카페는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이 모여 철학과 예술을 논의하는 공간이었다. 1900년대 비엔나의 카페에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아이디어를 교류하며 시대의 사상을 형성해 나갔다. 전시에서는 당시의 카페 의자까지 전시해 놓아 예술가들이 어떤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했는지를 느낄 수 있게 했다.


KakaoTalk_20250215_121754060_01.jpg 비엔나의 카페


이 시기의 미술은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이 주도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금박을 활용한 화려한 작품으로 유명하며, 그의 대표작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과 키스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클림트는 당시 미술형식에서 벗어나 비엔나 분리파 운동을 주도하며 새로운 예술 흐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직접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KakaoTalk_20250215_121754060.jpg 수풀 속 여인(구스타프 클림트)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작가는 에곤 실레였다. 그림에 문외한이던 시절, 카페에서 우연히 실레의 그림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림 속 남자는 뒤틀린 알몸과 불안한 눈빛, 에로틱하면서도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 그림은 처음 보는 터라 충격을 받아 바로 책장을 덮어버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그림이 오랜 기간 기억에 남았다.


에곤 실레(1890~1918)는 오스트리아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을 남겼다. 어린 시절 그는 역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몇 시간씩 기차나 풍경을 그리곤 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매독으로 고통받으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실레가 15세 되던 해에 사망했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아 실레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는 16세에 오스트리아 최고 미술학교인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보수적인 교육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의 삶을 뒤흔든 만남은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이미 성공한 화가였던 클림트는 실레의 그림을 사주거나 자신의 그림과 교환해 주며 그가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클림트를 비롯한 분리파 예술가들과의 지속적인 교류 속에서 실레는 1909년 결국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해 나갔다. 실레의 작품은 죽음에 대한 공포, 성적 욕망,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실레의 삶은 다사다난했다. 클림트가 자신의 모델 발리 노이질을 실레에게 소개하면서 그녀는 그의 뮤즈이자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1912년, 실레는 미성년자를 모델로 외설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3주간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후 그의 작품은 더욱 어두운 주제를 띠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실레는 징집되었지만, 그의 미술적 재능을 인정받아 비교적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다. 1915년, 그는 중산층 가정 출신의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하면서 발리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결혼 후 그의 작품은 이전보다 부드럽고 안정된 분위기를 띠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럽을 휩쓸면서 임신 중이던 아내가 사망했고, 불과 사흘 후 실레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겨우 28세였다.


고전 명화의 누드는 이상적인 비율과 균형을 강조하지만, 실레의 그림은 달랐다. 생기를 잃은 눈, 비틀린 구도, 앙상한 몸, 과장된 손가락까지, 그의 인물들은 전통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에는 인간의 본질을 파헤치는 강렬한 감성이 담겨 있었다.

KakaoTalk_20250215_044650801.jpg 남성의 반신 누드, 뒷모습(에곤 실레)


보통 사람들이 필터를 사용해 자신의 모습을 과장해서라도 아름답게 꾸미려는 것과 달리, 그는 거칠고 왜곡된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그렸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은 강렬한 눈빛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약 3,500여 점의 작품을 남기며 예술적 열정을 불태웠고, 그의 독창적인 화풍과 대담한 표현은 현대 미술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감정을 탐구한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KakaoTalk_20250215_041139828_04.jpg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에곤 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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