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라는 정글에서

by 이소희

11월 5일


새로 산 재킷의 단추를 하나하나 채우며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옷매무새를 고쳐 잡았다. 부서 배치를 받고 들어간 사무실, 낯설고 어색했다.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책상에 앉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자꾸만 두리번거리며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생소한 공간, 낯선 얼굴들, 그리고 ‘직장인’이라는 이름표. 모든 것이 새로웠다. 11월 5일은 그렇게, 내 인생의 또 다른 장이 열리던 날이었다.


긴장한 얼굴로 정장을 입고 앉아 있던 신입 동기들. 그들은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점심시간이면 식당에 모여 서로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사소한 성과에도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3년이 지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동기중 한 명이 빠르게 승진했고, 또 다른 동기는 유망한 부서로 옮겨갔다. 같은 출발선에 섰던 사람들이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면서, 동료였던 이들이 경쟁자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관계는 조금씩 어색해졌고, 마음은 복잡해졌다.



조직이라는 정글


겉으론 웃으며 인사를 나누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기 모임은 흐지부지된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을 외치던 우리는, 어느새 ‘누가 누가 잘 나가나’를 따지게 된다. 누군가는 사자처럼 팀을 이끌고, 누군가는 여우처럼 기회를 노린다. 독수리처럼 멀리 내다보는 이도 있고, 늑대처럼 무리를 이끄는 이도 있다. 각자는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생존 경쟁에 발을 담근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만 제자리인 것 같고,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든다. 회의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상사의 기대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잘못된 보고서를 만드는 성급함을 보이기도 한다. 절대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속도가 빠른 사람은 눈에 띄기는 쉽지만 쉽게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제대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모든 나무가 같은 속도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나무는 빠르게 자라 빛을 더 많이 받고, 어떤 나무는 그늘에서 천천히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두 숲의 일부가 되어 서로 의지하게 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같은 속도로 성장할 수는 없다.



살아남는 사람들의 비밀 병기


직장은 실력만큼이나 센스가 필요한 곳이다. 조직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흐름을 읽고, 기회를 포착하며,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조율할 줄 안다. 싸울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지혜, 여우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는 감각, 늑대처럼 협업하는 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불필요한 경쟁에 휘말리기보다 자신만의 장점을 키우는 일이다


조직은 전쟁터가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실제로는 말 없는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모두가 타이밍을 재고,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를 계산한다. 『손자병법』에서는 “적의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공략하라”라고 했다. 강한 곳에 부딪히기보다, 비어 있는 틈을 공략하라는 전략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몰리는 자리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성과를 쌓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간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선배가 떠오른다.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갖춘 전무가였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고, 퇴근 후에도 관련 공부를 멈추지 않아 결국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직장 안에서는 “그 사람이 빠지면 이 팀은 안 굴러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퇴직 후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활기찬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은 바람을 타고 높이 오르지만, 그만큼 쉽게 흔들린다. 반면,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은 가장 단단하고 안전한 자리에 선다. 그 선배가 바로 그걸 보여줬다.


한때 잘 나가던 이들은 놀랄 만큼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윗사람 눈에 들기 위해 줄을 서고, 내부 정치에 몰두하던 이들.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듯했지만, 중심에서 밀려나는 순간 회복이 어렵다. 실력보다 구조에 기대어 만든 자리는, 무너질 때도 순식간이었다.


결국, 직장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곳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해지는 곳이다.
조용히, 끈질기게, 자기 자리를 지켜낸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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