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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니멀라이프 출판기

30년 공무원, 이제는 작가입니다

by 이소희

나는 30년 넘게 ‘공무원’이라는 단단한 땅 위에서 살았다.
보고서를 쓰고, 회의를 주재하고, 정확한 언어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온 시간이었다.
질서 정연한 그 삶은 내게 ‘천직’처럼 느껴졌고, 당연히 정년까지 그 길을 걷게 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고 없이 방향을 튼다.
어느 날, 그 철옹성 같던 공무원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 세상이 거짓말처럼 멈춰버렸다.
그토록 숨 가쁘게 흘러가던 일상이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날.
하지만 그 자유는 곧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라는 막막함과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정해진 임무와 규칙 속에서 살아온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무한의 공간에 홀로 던져졌다.


그 막막한 시간 속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거창한 이유도 없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도 아니었다.
그저 내 안에 쌓인 이야기들을 꺼내고 싶었다.
글을 쓰는 그 시간만큼은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했고, 따뜻했다.


처음 투고한 원고는 두 번이나 거절당했다.
‘공무원이 무슨 글을 써?’라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때 느낀 좌절감과 후회, 그리고 동시에 글을 포기하지 못한 내 마음이 내 진짜 시작이었다.


그렇게 전자책 『철밥통, 이젠 안녕』과 공저 『말을 왜 그렇게 해?』를 세상에 내놓았고,
처음으로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도 책을 낼 수 있구나.”
“그리고 누군가는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기다려주고 있었구나.”

그 작은 용기가 이번엔 종이책으로 이어졌다.


우연히 듣게 된 ‘책 만드는 수업’에서,
북도슨트 임리나 작가님을 만나며 진짜 출판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책을 만들고, 출판사를 세우는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지만,
작가님의 따뜻한 격려와 꼼꼼한 안내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 첫 출판사, ‘비와나무출판’.
비처럼 조용하지만 꾸준히, 그리고 그 비를 맞고 자라는 나무처럼 단단하게 성장하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더 외롭고, 험난했다.
기획, 디자인, 편집, 마케팅까지 모든 걸 나 혼자 해내야 했고,
간신히 책을 세상에 내놓고도 ‘과연 누가 이걸 읽어줄까’ 하는 불안과 고독이 늘 함께였다.


그리고 지금,
30년 넘게 입었던 단단한 갑옷을 벗고
비로소 진짜 나로 살아가는 이야기, 『슬니멀라이프』를 세상에 내보냈다.


비워내고, 쉬어가고, 나를 돌아보고, 다시 살아가는 이 여정이
어쩌면 지금 막막함 앞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많이 겁이 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마저 끌어안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며 나로 살아가고 있다.


슬니멀라이프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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