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일 아침, 나는 문장을 훔친다

by 이소희


"미성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 T.S. 엘리엇


매일 아침, 나는 시인의 문장을 훔친다. 좋아하는 시를 한 줄 한 줄 따라 쓰며 하루를 연다. 좋은 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시인의 재능과 생각, 더 나아가 시인의 세계까지 내 안에 담고 싶어진다. 연하게 탄 커피 한 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흐르는 음악, 오래된 만년필, 노트, 시집 한 권. 책상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놓여 있다. 만년필 촉에서 파란색 잉크가 흘러나와 글을 쓸 때 서걱거리는 소리가 청량하다. 부드럽지만 미묘한 저항감, 그리고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면 시는 푸른 바다가 된다.


책상에 앉아 오늘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고른다. 노트에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마음을 붙잡는 문장에서 잠시 멈춰 머물러 본다. 시를 가장 천천히 읽는 방식이 필사이다. 이 과정은 긴 호흡을 동반한 명상처럼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한다.


이 루틴은 작년에 친한 지인과 함께 시작했다. 우리는 하루에 한 편의 시를 필사하고 낭독한 뒤, 밴드에 인증하기로 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고, 입으로 말하는 과정마다 시의 느낌은 달라진다. 같은 시라도 눈으로 볼 때와 낭독할 때의 느낌이 다르고, 손끝에서 문장을 따라갈 때 또 다르다. 종이 위해 시인의 문장은 푸른 바다처럼 일렁이며 질문을 던진다. 나는 몇 번이고 생각을 거듭하며 시인의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한다. 매일 필사하는 것은 문장을 채집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채우는 과정이자 의식이다.



규칙적인 루틴 속에서 창작의 힘이 길러진다.


창작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노력일까, 아니면 타고난 감각일까? 우리는 흔히 창작의 세계에서 천재성을 떠올린다. 타고난 감각과 영감으로 단번에 걸작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걸작은 끊임없는 반복과 단련에서 나온다. 에디슨은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라고 했고, 피카소는 "영감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늘 일하는 동안에만 찾아온다."라고 했다. 창작은 특별한 순간에 찾아오는 재능이 아니라, 매일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다듬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하루키는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해 5~6시간 동안 글을 쓴다. 하루 원고지 20매, 약 4,000자. 한 달이면 600매, 반년이면 3,600매가 쌓인다. 마치 마라톤을 완주하듯 그는 매일 같은 속도로 글을 쓴다. 오전 글쓰기가 끝나면, 오후에는 10km를 달리거나 수영하며 몸을 단련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의 루틴을 보면 알 수 있다. 창작은 영감이 아니라 꾸준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타고난 문장력이 부족한 나는 매일 한 줄씩 쌓아가기로 했다. 재능이 없으니 노력할 이유가 생긴다. 시인의 언어가 내 안에서 서서히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옮겨 적어간다. 마치 수도승이 새벽어둠 속에서 홀로 기도하듯,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촛불 아래 가만히 경전을 베껴 쓰듯, 묵언 수행을 하며 한 획, 한 획을 새기는 손끝에는 간절함이 깃든다. 한 장을 채울 때마다 허리를 세우고 숨을 고른다. 필사는 나에게 그런 과정이다.



깊이 읽고, 깊이 쓰다


천천히 따라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배운다. 필사를 해본 사람들은 필사가 글쓰기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문장의 구조를 이해하고 표현의 흐름을 체득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길러진다.

hand-1868015_1280.jpg

필사는 독서와 글쓰기 사이에 놓인 가장 느리고 깊은 다리다. 눈으로 훑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쓰면서 문장을 음미하게 된다. 평소에 스쳐 지나갔던 표현이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어휘력이 풍부해진다. 필사를 하면 다양한 표현을 접하고, 생소한 단어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보너스로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자연스럽게 익혀진다. 필사는 다듬어진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과정이기 때문에 올바른 문장을 몸에 익힐 수 있다. 필사는 언어 감각을 깨우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만드는 습관이다. 매일 한 편의 시를 따라 쓰는 것이 더 좋은 글을 쓰는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필사는 하루의 시작이다. 바쁜 하루에 밀려 거르기라도 하면, 어딘가 허전하고 하루의 균형이 흐트러진다. 작은 습관 하나가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매일 한 줄씩 쌓아가고 있다. 손끝을 따라 흐르는 문장이 나를 확장하고, 나를 깊어지게 한다. 천천히 쓰고, 천천히 읽으며, 문장 하나하나를 내 안에 새긴다. 좋은 문장이 쌓이면, 좋은 생각이 자란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 쌓이면, 언젠가 나도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른 문을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