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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Jan 20. 2023

어쩌다 미술관 학예과장

기획전시를 수출하다


낯선 발령   



2022년 1월 10일 갑자기 공립미술관으로 발령이 났다.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짐을 싸고 새로운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친구 따라 전시회 두어 번 갔다가 생소한 작품 앞에서 대충 둘러보고 나왔던 경험이 전부였다.      


새해가 시작된 1월 초에 발령이 나서 한해의 전시계획까지 수립해야 했다. 특히, 작년에는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계획 세우기가 불가능하다고 직원들은 말했다. 전시하려면 작품을 국내외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예산은 오히려 전년보다 반이나 삭감된 상태다.       


미술관은 예산확보가 관건인데 코로나 긴급지원금으로 문화예술 예산 절반이 삭감되고 물가는 오르고 전시해야 하는 직원들의 애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렵지만 재밌는 미술



한 달이란 시간 동안 미술전공자들 앞에서 진땀을 흘리며  몇 차례의 회의와 고심 끝에 전시 규모는 줄였지만, 소장품 전시와 기획전, 국제전까지 전시계획을 수립했다.  

   

전시계획까지 어렵게 세운 나에게 관장은 과장이 비전공자가 왔다고 미술계 사람들이 뭐라 할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귀띔해 준다. 기분이 언짢았지만 표현하진 않았다. 미술이 뭐라고, 그렇게 오기로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워낙 아는 게 없어서 미술 입문용으로 몇 권의 책을 읽고 미술 영화도 보고 부지런히 전시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왕 다니는 거 블로그에 게시하고 싶어졌다.  마침, 나와 마음이 잘 맞는 학예사와 스낵미술이란 블로그를 만들어 미술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스낵미술이란, 삶이 허기진 사람들에게 미술로 스낵처럼 맛있는 즐거움을 주기 위한 블로그다.  

    

포스팅을 위해서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정성스레 사진도 찍어서 글을 올리다 보면 어느새  자료가 축적된다. 모르는 배경지식을 알게 되니까 전시 보는 게 즐거워진다.




초심자(Begginer's luck)의 행운



그러던 어느 날 국립대만미술관에서 우리가 전시한 어윈올라프전을 대만에서 전시하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우리 미술관 개관 이래 처음이다. 그것도 아시아 최대 규모인 국립미술관에서 우리가 기획한 전시를 하겠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행운이 찾아온 거다.     


비전공자인 내가 국립대만미술관으로부터 초청받아 담당 학예사와 출장을 갔다. 국립대만미술관은 1988년에 설립되었는데 일 년에 30개 이상의 전시가 열리고 개관 이래 900회가 넘는 전시를 한 아시아 최대 규모라 우리 미술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처음 했던 전시가 네덜란드 사진작가인 어윈 올라프 ‘완전한 순간-불완전 세계’ 국제전을 개최했는데 이곳 국립대만미술관에서 다시 그 전시를 보니 가슴이 꿍꿍 뛰었다.  

대만은 8월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덥고 습하다. 게다가 코로나가 워낙 삼엄해서 4일이나 격리를 하고 난 후 3일 동안 전시 기자회견과 개막식에 참석했다.


네덜란드 대사와 국립대만미술관 관장, 학예사, 기자, 대만 국민들 앞에서 우리 미술관 대표로 인사말을 했고 학예사는 도슨트와 시민교육을 했는데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너무 빠듯한 일정에 관광은 꿈도 못 꾸었지만, 대한민국 공공미술관 학예 과장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행복한 출장이었다.  


일이라는 건 업무 지식도 필요하지만, 지식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열정만 있으면 전문가가 아니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다. 



미술은 또 다른 세상



사진기가 개발되면서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은 미술의 분야가 퇴색할 거라 절망했다.

그러나 시시각각 빛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을 아름답게 화폭에 담았던 인상파 화가들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미술사조를 만들어냈다.


 화가들은 주류 미술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창작을 꿈꾸며 표현하려고 한다. 그런 혁신적인 화가들이 훌륭한 걸작을 만들고 거대한 물줄기의 방향을 바꾼다. 새롭고 창의적인 시대를 앞선 거장들의 작품 앞에서 우리의 가슴은 뛴다.   

      

오랜 기간 행정업무만 하다 보니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무료해하고 있을 때 미술관에서의 근무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듯 또 다른 세상으로의 문을 열어줬다.

     

그것은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주 낯선 장소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자. 뜻밖에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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