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희 Jan 31. 2023

행복은 불현듯 다가와 무심히 지나간다

현실이  파라다이스는 아니지만

행복한 전시를 보다.



일주일도 넘게 목이 퉁퉁 붓고 온몸이 으슬으슬, 몸살감기가 심했다.

강추위가 계속되어 이 몸으로 나가기에 겁이 나서 집에만 있다가 오늘은 전시가 보고 싶어졌다.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보니 감기도 기세가 약해진 듯하다.


'3분의 행복'이라는 고 강석호 화가의 개인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라서 보러 나왔다. 

‘3분의 행복’은 작가가 쓴 수필 제목이기도 하다.

집에서 작업실로, 산책길로, 다시 작업실을 거쳐 집으로 돌아가는 하루의 여정을 담은 수필집이라고 전시 서문에 적혀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작가의  담백한 일상을 보는 느낌이다.

‘3분’은 작가에게 있어 일상의 진부함으로부터 무심함을 유지하는 관조적 거리감이라고 했다.

‘무심함을 유지하는 3분의 거리’라 작가의 수필이 읽고 싶어졌다. 

후에 찾아보니 절판된 책인지 도서관과 서점에서 찾을 수는 없어 아쉬웠다. 

     

전시를 보고 행복이라는 개념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잠시 사로잡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철학자가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했으니 삶의 지향점이 행복인가 싶기도 하다.

행복은 욕망이 충족된 상태일까?  편안함일까? 돈이 많고 지위가 높으면 행복할까?  

내게는 행복의 개념이 허공을 부유(浮遊)하는 신기루처럼 명쾌하지도 선명하지도 않았다.



행복은 파라다이스라고요?



나는 어렸을 적 행복은 곧 파라다이스라 믿었다.

가난한 살림 탓에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셋방살이도 지겨웠고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엄마의 모습도 싫었다. 

어린 마음에 크면 달력에 나오는 성처럼 큰 집을 사서 엄마 아빠와 돈 걱정 없이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어릴 적 바람은 꿈에 지나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해야 할 일을 숙제하듯 하며 치열하게 살 다 보니 행복 타령이나 하는 것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노벨 문학상(1950년)을 받은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행복한 인생이란 조용한 인생이다'라고 했다. 

지나친 자극이나 강렬한 즐거움만이 행복은 아니라고 한다.   


작가가 말하는 3분의 행복이란 러셀이 말한 내부로부터의 행복을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닌가 싶다 

전시를 본 후 마음 한켠이 따듯해졌다. 

작가가 느끼는 행복한 순간을 들여다보고 행복은 일상에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무심히 지나간 3분의 행복한 순간은 참 많았다.      




불현듯 다가오다 무심히 지나가는 행복



요즘 월급만 빼고 난방비를 시작으로 버스·지하철·상하수도 요금 모두 다 오르고 있다.

아끼고 아꼈지만, 관리비가 전월보다 30%나 더 나왔다.

서민들 속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며칠째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속옷도 입고 두꺼운 스웨터도 걸치면서 낮 시간대는 난방도 끄고 산다.


어릴 적 꿈꿔왔던 부자는 그만두고 난방비 걱정 없이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창문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길게 드리운다. 

오전 11시, 해에서 나오는 따듯한 빛줄기가 거실에 깃들면 난방 없어도 따듯하다.

햇살만큼은 그 누구 집 부럽지 않게 맘껏 사용한다.

추위로 움츠린 어깨도 펴고  커피도 마시는 여유도 부려본다.


해가 넘어간 저녁 다시 집안에 한기가 들면 조심스레 난방기 온도를 올린다.

집안 온기가 퍼질 때쯤 퇴근한 남편이 붕어빵을 사 와 무심하게 식탁에 놓는다. 

저녁 다 해났는데 뭐 하러 사와. 남편에게 눈을 흘기며 재빨리 붕어빵 하나를 손에 잡는다.

붕어빵을  꼬리부터 한입 베어 문다.

바싹 갓 구운 맛이 느껴진다.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머리도 한입 베어 먹는다.  

맛있는 몸통은 제일 나중에 먹는 것이 나름의 방식이다.  

남은 몸통도 자비 없이 크게 한입 넣으면 달달한 팥앙금이 입안에 가득하다. 

난방비 걱정하던 궁상맞은 아줌마는 어디 가고 아이처럼 붕어빵 하나에 행복을 느낀다. 


내 방으로 스며든 따스한 햇살처럼

불현듯 다가오기도 무심히 지나가는 행복은 내 일상에 있다.




"행복한 시간은 불현듯 다가오기도 무심히 지나가기도 합니다그건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시간 때나 다가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별일이 없이도 그 3분은 항상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나는 그 3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다시 정정하면 생각을 하질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난 그저 숨만 크게 쉬고 있을 뿐입니다하지만 어쩔 때 보면 3분이라는 시간은 아주 긴 터널을 지나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강석호(1971-2021), 3분의 행복 중에서 -     



                     전시 정보

기간 : 2022.12.15.(목) ~ 2023.03.19.(일)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요금 : 무료

작품수 : 작품, 디자인 컬렉션 등 약 180여 점

전시부문 : 회화, 드로잉, 디자인 컬렉션 등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미술관 학예과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