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희 May 09. 2023

몽마르트르 예술가들

비 오는 몽마르트르를 걷다.

전시를 보고 그림을 배우면서 파리에 가서 몽마르트르를 걷고 싶었다. 예술과 낭만의 거리 몽마르트르는 예술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이번에 운 좋게 프랑스 파리 북부 18구에 위치한 몽마르트르에 가게 되었다. 

파리의 봄은 제법 춥고 변덕스러웠다.  갑자기 비가 왔다 멈추기를 반복해 접이 용 우산을 폈다 가방에 넣기를 여러 번 했다. 몽마르트르 하면 언덕 위에 샤크레쾨르 대성당과 카바레, 예술가들의 살았던 집, 거리의 무명 화가가 떠오른다. 


파리에서 유일한 고지대로 ‘몽(Mont)’은 작은 언덕을, '마르트르(martre)'는 ‘순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풀이하자면 ‘순교자의 언덕’을 의미한다.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유래는 로마 정복 시기인 4세기 초반까지 가톨릭이 박해받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리 초대 주교이던 생드니 신부님이 목이 잘리자,  우물에서 피 흘리는 자신의 잘린 목을 씻고 북쪽으로 6킬로미터 더 걸어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신부님이 걸었던 일대가 몽마르트르 언덕의 기원이다.


전철역 바로 옆에 뤽틱스 광장에 프레데릭 바론 작가의 아이디어로 만든 사랑의 벽이 나온다. 파란 타일 위에 각 나라 언어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로맨틱한 문구가 적혀 있다. 젊은 연인들은 사랑의 순간을 사진에 담느라 분주하다.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샤크레쾨르 대성당은 1871년 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고 가톨릭교도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지어진 성당이다. 성당에서 시야가 확 트여 아름다운 파리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지금은 몽마르트르 거리에 무명 화가와 잡상인, 소매치기들이 많지만,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모딜리아니, 달리, 고흐, 피카소 같은 배고픈 예술가들이 집값이 싼 이곳에 모여 미래를 꿈꾸던 장소다.

과거 파리 외곽에 위치한 몽마르트르는 수공업 공장과 석고 대량 생산지, 표백장, 세탁 공장, 술집 등 허드렛일을 하는 곳이었다. 


고흐가 그린 '채석장이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보면 일과를 마친 채석장 광부가 구부정하게 언덕 위를 오르고 있다.  남자의  하루가 참으로 고달파 보인다. 

 

고흐의 채석장이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 고흐미술관 소장


몽마르트르의 고달팠던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르누아르의 작품 속 몽마르트르는 행복 그 자체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댄스'에서는 화창한 일요일, 나들이옷을 입고 한껏 멋을 낸 여인들이 와인을 마시며 춤을 추는 모습을 담았다. 몽마르트르 사람들은 고된 일상을 보내고 주말만큼은 모든 시름을 잊고 하루를 맘껏 즐겼던 것을 알 수 있다.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댄스, 오로세미술관 소장

몽마르트르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 남자가 벽 속에 갇혀있는 재미는 동상이 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의 소설 벽을 뚫는 남자의 한 장면이다. 이동상은 벽을 뚫는 능력을 지닌 우체부 듀티율 씨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손을 만지면 글 쓰는 재주가 생긴다는 말이 있어 동상의 손 부분이 윤이 나게 반짝인다. 손을 살짝 잡아봤으니 이제 나도 글을 잘 쓰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는 프랑스의 샹송 가수 겸 영화배우였던 달리다(Dalida)의 동상도 있다. 베사메무쵸(Be same Mucho), 알랭 들롱과 같이 부른 파롤스, 파롤스(Paroles Paroles)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노래를 부른 아름다운 달리다도 이곳 출신이다. 그녀의 가슴을 만지면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 때문에 사람들의 손이 닿아 반들반들해졌다.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몽마르트르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선술집들이 나온다. 작은 무대가 있는 주점을 프랑스에서 카바레라고 하는데 전설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르 샤누아르, 검은 고양이 카바레, 물랑루주에서는 에릭 사티가 피아노를 쳤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의 피아노 연주가 잔잔히 들리는 것 같다.

짐노페디는 ‘발가벗은 소년들’이라는 뜻으로 거추장스러운 것을 뺀, 꾸밈이 없다는 의미를 가진 곡이다. 이 곡은 약간 고독하고 차분하다. 에릭 사티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몽마르트르의 뮤즈, 수잔 발라동이 그의 연인이기도 하다. 에릭 사티가 죽은 후에 헤어진 연인 수잔 발라동에게 부치진 못한 애절한 편지가 발견되어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수잔 발라동은 화가의 모델이면서 1894년 예술가협회에 회원으로 가입된 최초의 여성 화가다.

그녀가 살았던 장미의 집이 몽마르트르에 있다. 그녀의 집은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화려해 그 앞에서 사진 찍는 이들이 꽤 많다.  

 

1865년 사생화로 태아나 어린 시절부터 재봉사나 세탁부로 일하며 어머니를 도왔다. 몽마르트르에서 서커스 단원으로 일했지만 추락 사고를 당해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되면서 화가들의 모델이 된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 주인공이 발라동이다. 로트레크가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여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에드가르 드가에게 소개해 주고 수잔 발라동은 더 이상 모델이 아닌 화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녀는 화가들의 손끝에서 소녀로 농염한 여인으로 표현되었고 실제로 많은 화가와 사랑에 빠졌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를 아들까지 낳았다. 평생을 몽마르트르에서 살았던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녀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지만 할머니는 위트릴로를 재우기 위해 술을 주기 시작해 알코올 중독에 걸린다. 수잔 발라동이 아들의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그림을 가르쳐 그는 몽마르트르 곳곳을 그림으로 남겼다. 


위트릴로의 몽마르트르 풍경, 파리 국립 근대미술관 소장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 속 몽마르트르 풍경은 작가의 인생처럼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이 피카소의 뮤즈인 '애드리아나'를 만났던 것처럼 몽마르트르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비 오는 몽마르트르를 걷고 또 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은 불현듯 다가와 무심히 지나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