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맘껏 여행도 다니고 엄마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효도 여행이란 단어를 검색하며 내내 설레었다. 어딜 가면 좋을까? 곧 날이 더워지니 북해도에 가 보랏빛으로 물든 라벤더를 보고 달빛 아래 온천을 하며 수다를 마음껏 떨고 싶었다. 동생에게 북해도 여행지를 톡으로 공유시켜 보냈는데 바로 전화가 왔다. 엄마가 공원에서 쓰러져 걷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여행 가기 힘들다고 말한다. 근데 왜 나는 몰랐지?
엄마는 늘 괜찮다고 하셨는데 아픈 데 없다고 하셨는데 여권을 만들자는 동생의 말에 힘들어 못 갈 것 같다고 이제야 말했다. 핑계 같지만 직장 다니며 시부모님과 평생 같이 살다 보니 엄마랑 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세월만 보냈다.
퇴직하고 시간이 많아지면 하려고 뒤로 미루었던 일들 중 하나였는데, 평범한 여행도 결국 못하게 되었다. 인생에 좋은 때란 따로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엄마가 아픈 것도 모르던 나한테 화가 났다. 어린 시절 도시락통에서 터져 나온 김칫국물처럼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버렸다.
뜨거운 바람이 불더니 비가 내렸다.
일단 여행 대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엄마랑 많은 시간을 보내자고 동생과 약속했다. 동생이 토종닭에 밤과 은행, 마늘, 대추를 같이 넣어 푹 삶은 닭백숙을 만들었고 나는 사골국과 엄마가 좋아하는 나물을 싸서 엄마 집에 같이 갔다. 엄마와 아빠는 뭐 하러 힘든데 이런 걸 만들어 왔냐며 안절부절못한다. 밥 한 끼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앉아 상을 받는 법이 없다. 연신 냉장고 문을 열며 이것저것 차리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는 늘 작고 평범한 일에 감사하는 소박한 사람이다. 간간히 웃을 때마다 깊이 팬 주름이 더 선명해지지만 엄마의 웃는 모습이 좋다. 흑색 사진 속 곱디고운 우리 엄마는 이제 등이 굽고 왜소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새삼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