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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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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Jun 14. 2023

바람이 분다

6월의 바람이 분다.


구멍이 숭숭 뚫려 찬 바람이 이는 것처럼 마음이 시리고 허전할 때가 종종 찾아온다.

버리지 못한 욕심과 괜한 걱정거리를 안고 살다 보니 찾아오는 그런 허한 바람이 분다.

지난 6개월 동안 다독여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느닷없이 마음에 시린 바람이 한 차례씩 몰아칠 때가 있다.


이리저리 마음이 나부끼는 날엔 감정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휴양림에 숙소를 정하고 남편과 트래킹을 떠났다.

불어난 몸무게도 정상으로 돌리고 복잡한 감정을 걷어내는데 걷는 여행이 최고다.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도시에 도착해 자유로운 걸음을 마음껏 떼고 싶었다.

오늘 걸을 곳은 문경새재다. 경상북도 문경에 있는 도립공원이다. 문경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한다.

험하다는 뜻일까 살짝 걱정되지만 일단 걷는다.


트래킹 코스는 1 관문, 2 관문, 3관으로 총거리가 7km로 왕복 14km로 좀 긴 코스다.

힘들면 전동차 타고 산책로를 이용할 수도 있고 중간에 2 관문과 3 관문에서도 이용할 수 있으니 걷다 무리다 싶으면 전동차를 타도 된다.  날이 좀 더운 편이었는데 산책길 양편에 오래된 나무들이 만들어 준 시원한 그늘 아래로 걸으니 좋다.

이곳은 온초록이 만든 세상이다.  

 

가는 내내 오래된 소나무에서 나는 솔향이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 준다.

자세히 보니 소나무에 v자로 깊게 파인 자국들이 보인다. 일본군이 강제로 조선인을 동원하여 송진을 채취해 만들어진 상처라고 한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저렇게 깊게 팬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마음을 아리게 한다.

 

상처 난 소나무를 보며 내내 답답했는데 때마침 시원한 조곡 폭포수를 만났다.  요 며칠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수량이 엄청나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답답함을 다 몰고 가버릴 듯 시원하다.



걷는 것은 지혜로워지는 과정인 것 같다.


이럭저럭 3 관문까지 걷다 보니 이마와 목덜미가 흥건하게 젖어 있다.

피곤하기도 하고 땀도 식힐 겸 앞서가는 남편을 불러 쉬어 가자고 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 벤치에 그만 누어 버렸다.


청명한 초여름 하늘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솜이불처럼 푹신한 구름과 푸른 하늘이 꼭 어릴 적 신나게 놀며 바라보던 그 하늘인 듯 정겹다.

올려다보이는 하늘은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음 소거 된 것처럼 고요하다.

깃털같이 가벼워 보이는 구름이 정지된 화면처럼 보이지만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선을 고정하고 멍하니 구름만 바라보길 10여 분, 손톱만큼 구름이 이동해 갔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생각들이 수면아래로 잦아든다.

오르막길에서 흘렸던 땀을 식히고 나니 쓸데없는 걱정도 저 구름 안으로 사라진 듯 편안해진다.


뭔가 따끔하다 싶어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휘저었는데 겁 없이 일탈한 개미가 내 팔등 위로 잘못 올라온 거다.

놀란 개미는 중심을 잃고 팔에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다 간신히 기기 시작했다.

겨우 정신 줄 잡은 개미는 용을 쓰듯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땅에 떨어져 일그러진 오디 열매 때문에 작은 개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길 잃은 저 개미가 지금 내 모습은 아닌가? 싶어 한참을 개미의 행방을 찾았지만, 볼 수가 없다.

다시 제 길을 가게 되겠지?


살다 보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인생은 오선지 위에 음표처럼 낮고 높음을 반복한다. 단순하지만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 것도 내  음을 찾는 일이라고, 제 무리 속으로 돌아가려는 개미처럼 걸음에 집중하며 오늘의 트래킹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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